싱가포르 정상회담 2주년을 맞은 북―미가 북한 인권 문제로 충돌하고 있다.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를 놓고 통신연락선 폐쇄 결정을 내린 것에 미국이 실망감을 드러낸 데 이어 ‘종교자유 보고서’를 내면서 북―미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인권 문제 해결을 못 박았다. 대북전단으로 시작된 남북 갈등이 북―미 간 인권 충돌로 이어지면서 향후 한반도 정세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北―美, 대북 인권 ‘정면충돌’
11일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후속 대응 조치로 남북 직통 통신선들을 폐쇄 및 차단한 데 대해 미국이 이례적으로 “실망했다”고 표현하자 즉각 반발했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은 조선중앙통신과의 문답에서 “북남(남북) 관계는 우리 민족 내부 문제로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시비질할 권리가 없다”며 “부질없는 망언을 늘어놓았는데 어처구니가 없다. 남의 집 일에 쓸데없이 끼어들며 함부로 말을 내뱉다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에 부딪힐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의 겁박에 미국은 인권 문제로 응수했다. 미 국무부는 10일(현지 시간) 발표한 ‘2019 국제종교자유 보고서’에서 인권 문제를 북―미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걸었다. 전년 보고서에는 없었던 내용이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네 가지 합의 사항 중 처음이 “새로운 북―미 관계 추진”이었는데 회담 2주년이라는 미묘한 시점에 미국이 새로운 관계 추진의 선결조건으로 북한의 아킬레스건인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것이다.
샘 브라운백 미 국무부 국제종교자유담당 대사는 이날 종교자유보고서 발표 및 외신기자 브리핑에서 “북한은 종교적 박해의 영역에서 아주 공격적이고 지독하다”고 말했다. 이번 보고서에는 ‘지독한(egregious) 인권 침해’ 부분이 빠져 있어 신중하게 수위를 조절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육성으로 미 고위 당국자가 인권 문제를 비판하면서 2017년의 북―미 ‘말폭탄 전쟁’이 재연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 ‘북한 내부 변화’ 이끌 북한 인권 문제 제기
미국은 과거 북―미 간 냉기류가 지속될 때 북한 인권 실태를 비판하곤 했었다. 버락 오바마 정부 당시 국무부가 2015년 6월에 발표한 ‘2014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선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기존의 열악하다(poor), 개탄스럽다(deplorable), 암울하다(grim) 등의 평가를 뛰어넘어 “세계 최악(the worst in the world)”이라고 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로 바뀐 뒤 북―미 대화 국면에선 비핵화 협상을 이유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톤을 낮췄다. 미국이 북한 인권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갖는 것은 북한 내부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한이 인권 실태에 관련된 외부 정보 유입을 철저히 차단하고 처벌해 온 것도, 대북전단에 극렬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북한이 협상 여지를 밝혔다는 해석도 나온다. 권 국장은 “우리와 미국 사이에 따로 계산할 것도 적지 않은데 괜히 남조선의 하내비(할아버지) 노릇까지 하다가 남이 당할 화까지 스스로 뒤집어쓸 필요가 있겠냐”며 북―미 간 ‘계산이 남았다’고 했기 때문. 이에 대해 박장호 외교부 북핵외교기획단 부단장은 11일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 주최 화상회의에서 “북한이 미국과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북―미 갈등이 인권 문제로 확전되는 양상을 지켜보는 청와대의 속내는 복잡하다. 청와대가 내놓을 후속 카드가 마땅찮은 데다 인권 문제에 한 소리를 보탰다가 북한의 강경 반응만 자아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정부 당국자는 북―미 간 긴장 고조에 대해 “미국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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