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기업규제 입법 강조 90분뒤… 기재부는 “투자하라” 엇박자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2일 03시 00분


당정 딴소리에 현장 혼란

4·15총선을 통해 슈퍼 여당으로 거듭난 더불어민주당이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기업 규제 입법을 선언한 뒤 서로 뒤엉킨 정부 여당발 메시지로 인해 경제 현장의 혼선이 커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제 쇼크를 극복하기 위해 민간 기업의 투자를 독려하다가도 대기업을 향해 칼날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 기업 현장에서는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위기 속에 개혁도 하고 투자도 하라니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나온다.

○ 여당은 “경제 정의 실천해라”, 정부는 “투자해라”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1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잘못된 기업 지배구조로 인한 문제는 개별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악화시킨다”며 “상법을 개정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경제정의를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 감독법에 대해선 “민주당의 총선 공약이자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라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또 기업들을 향해 “기업들도 규제 혁신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경제민주화에도 자발적으로 앞장서 주기 바란다”며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21대 국회 원 구성이 끝나는 대로 이들 법안의 입법을 서두를 계획이다.

상법 개정안 등은 정부 입법으로 추진되는 만큼 청와대와 민주당의 교감이 있었다는 의미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공정 경제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가치”라며 “필요 이상으로 전선을 넓힐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입법의 후퇴가 있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임기가 2년도 남지 않았고, 내년 정기 국회는 차기 대선 레이스의 무대이기 때문에 반드시 올해 안에 관철시키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대대적인 기업 개혁을 예고한 지 약 90분 뒤에는 기획재정부가 기업을 향한 투자 독려에 나섰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조8000억 원 상당의 기업 민간 투자를 하반기에 신속 발굴하고 공공 투자 60조5000억 원은 연내 100% 집행 완료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기업은 이미 올해 투자 계획을 마련해 집행 중이다. 그런데 정부가 ‘신속 발굴’이라는 이름으로 추가 투자에 나서라고 요청한 것이다.

문제는 정작 정부도 마땅한 투자 수요를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재부는 기업 신규 투자와 관련해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를 통한 잠재적 투자 수요를 파악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을 목표로 하는 ‘그린 뉴딜’의 경우 정부와 여당이 아직 구체적인 밑그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 기업들 “경제 전시 상황이라면서…”
이 같은 엇갈리는 메시지에 기업들은 “정책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혼란에 빠졌다. 김영완 한국경영자총협회 기획실장은 “기업을 규제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뿐”이라며 “상법, 공정거래법 등 이중삼중으로 경영권 활동을 제한하면서 국내에서 투자 및 고용을 늘리라는 요구는 난센스 같다”고 말했다. 4대 그룹의 한 사장급 임원도 “이대로라면 갈수록 미국이나 유럽 투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정의 이 같은 메시지 혼선은 컨트롤타워인 청와대, 특히 정책실이 정책 우선순위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문 대통령조차 “우리 경제의 근간인 기업이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빠른 자금 지원을 독려할 정도로 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정부 여당이 이른바 ‘기업 옥죄기’ 법안을 내놓는 건 타이밍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말한) ‘경제 전시 상황’에서 기업에 각종 제약 조건을 요구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일단 코로나19 위기를 뚫고 살아남아야 기업지배구조 등 체질 개선도 가능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서동일 기자
#더불어민주당#기업규제#기획재정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