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최근 대남 강경 행보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막강한 권력 행사다. 김 제1부부장은 일련의 대남 행보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제 없이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김 제1부부장의 권력 지위의 또 한 번의 상승 기류는 지난 3월 두 번의 담화를 발표하면서 나타났다. 자신의 명의로는 처음 발표한 두 담화를 통해 그는 미국과 남측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이후 지난 4일 세 번째 담화에서는 대북 전단(삐라) 문제를 들어 대대적인 대남 공세에 나섰다. 그리고 대응 조치로 개성공단 철거,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남북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 등을 언급했다. 상당히 굵직한 사안들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었다.
이어진 통일전선부의 담화에서 그는 ‘대남 총괄’로 처음 언급됐다. 북한이 우리 측과의 관계를 ‘대적 사업’의 대상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 곧 김 제1부부장의 머리에서 나온 셈이다.
비슷한 시기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는 사뭇 결이 달랐다. 김 위원장은 대남 사업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공개 비공개 행보를 이어갔다.
지난 7일 열린 정치국 회의는 김 제1부부장의 강력한 대남 담화가 발표된 직후 열린 것이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이 회의를 주재하면서 대남 사업과 관련된 언급은 하나도 내놓지 않고 화학공업 강화 등 ‘내치’와 관련된 안건만 다뤘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과 김 제1부부장이 내치와 외치를 구분해 맡는 ‘투 탑’ 방식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김 위원장이 경제난 정면 돌파전과 관련된 사안에 집중하는 동안 김 제1부부장이 대미, 대남 관계를 맡아 대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13일 김 제1부부장의 담화를 보면 그가 군에 대한 영향력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 등장한다.
담화에서 그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할 것이라면서 “다음번 대적 행동의 행사권의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두 가지 해석이 동시에 제기되는데, 하나는 북한의 ‘대적 사업’의 구체적 행동 주체가 대남 사업부에서 군대로 넘어갔을 것이라는 분석과, 김 제1부부장이 군대의 대남 ‘대적 사업’도 관장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가 군대의 대남 사업까지 지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정치적 입지에 대한 해석은 또 한 번 그 폭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대남 사업 부서만 관장하는 대남 총괄이 아니라 대남 사업과 관련해서는 당, 정, 군의 모든 조직을 관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김여정 제1부부장의 권한 확대가 곧 김정은 위원장의 권한이 ‘낮아진’ 것이라는 분석은 위험해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 들어 공개 행보를 크게 줄이고 있지만 국가 운영과 관련된 사항을 결정하는 노동당의 주요 회의는 모두 주재하고 있다.
그리고 대내외에 대한 ‘서한 정치’도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무엇보다 김 제1부부장이 담화에서 “나는 위원장 동지와 당과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행사”한다고 밝힌 것을 보면 김 제1부부장은 철저히 김 위원장의 권한을 대행하는 수준이지 권력 자체를 이양받은 것으로 판단하긴 아직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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