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취임 3주년 기자회견 이후 한 달여 만에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對北) 메시지는 변함없이 “대화하고 협력하자”였다. 4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를 시작으로 북한이 군사 대응까지 공언하고 나섰지만 문 대통령은 15일 “남과 북이 자주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도 분명히 있다”며 계속해서 독자적인 남북 협력을 강조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날도 ‘서릿발 치는 보복 행동’을 공언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남북 정상 간 신뢰 호소와 남북경협 외에 뾰족한 반전 카드를 내놓지 못한 만큼, 당분간 한반도 긴장 상태는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 文 “남북, 낙관적 신념 가지고 나아가야”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남북 관계는 언제든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격랑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며 “북한도 소통을 단절하고 긴장을 조성하며 과거의 대결시대로 되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과 북이 함께 돌파구를 찾아 나설 때가 됐다”며 “한반도 운명의 주인답게 남과 북이 스스로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찾고 실천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월 신년사에서 제안한 독자적인 남북 협력에 북한이 군사도발 엄포로 응수하고 있지만 문 대통령은 남북 철도 연결 등의 협력을 다시 촉구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어가는 노력도 꾸준히 하겠다”고 말했다. 대북제재 완화를 위해 국제사회를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역할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6·15, 4·27 등 남북 합의를 언급하며 “국회에서 비준동의되고 정권에 따라 부침 없이 연속성을 가졌다면 남북 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발전됐을 것”이라고 했다. 판문점선언 비준동의를 재추진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경기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식에서도 영상 축사를 통해 이런 내용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영상 축사에서 문 대통령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착용했던 넥타이를 매고 판문점선언 공동 발표 때 사용한 연대(演臺)에 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판문점선언을 지키고 ‘6·15 정신’을 함께 이어가자는 호소를 보낸 셈이다. 이 넥타이는 김 전 대통령의 3남인 더불어민주당 김홍걸 의원이 선물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정세를 획기적으로 전환하고자 했던 김 위원장의 노력을 나는 잘 알고 있다”고도 했다. 아직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는 김 위원장에게 ‘정상 간의 신뢰’를 강조하며 대화를 촉구한 것.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이날 2018년 남북 철도 연결 착공식이 열렸던 도라산역에서 진행된 고 문익환 목사 시비 제막식에 참석해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라는 내용이 담긴 문 목사의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를 읊었다.
○ 새로운 카드 없이 北 호응만 기대하는 靑
문제는 북한의 릴레이 대남 비방전 개시 후 처음 나온 문 대통령 메시지가 기존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여권 관계자는 “일단은 남북 합의를 지키겠다는 확신을 심어주면서 북한의 대응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서도 “청와대가 북한이 일절 호응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준비는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는 우려가 나왔다. 대화와 협력이라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무력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사실상 북한에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행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목숨 걸고 사수하지만 (우리가 북한을) 선제 타격은 하지 말라. 그러나 상대가 선제 타격할 경우 강력히 응징하라’고 얘기했다”며 “김 전 대통령이 했던 영민하고 결기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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