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대남 군사행동을 예고한 가운데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17일(현지 시간) 미국을 전격 방문했다. 1월 북한 개별 관광 등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을 찾은 이후 5개월 만에 대북 리스크 관리를 위해 방문한 것. 정부는 “상황 악화를 방지하는 데 중점을 둔 방문”이라며 추가적인 북한의 도발을 방지하기 위한 긴밀한 한미 조율을 예고했다.
○ 北 ‘적대 행위’ 나선 뒤 첫 韓美 고위급 협의
이 본부장의 방미는 북한의 대남 도발이 본격화된 가운데 한미 간 채널이 가동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미가 굳건한 동맹임을 재차 확인하고, 강경한 입장을 내는 것 자체가 북한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미는 비핵화 대화가 진전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정부의 대북 사업 추진 속도를 놓고 종종 이견도 노출해 왔는데 이번 북한발 위기로 공조가 긴밀해질 수 있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의 도발에 대항하는 한미 결속이 공고해지면 그 울림은 크다”고 설명했다.
이 본부장은 워싱턴에서 국무부 대북협상특별대표를 겸하고 있는 스티븐 비건 부장관 등과 협의를 갖는다. 비건 부장관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양제츠(楊潔지)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의 16, 17일 하와이 회담에 배석한 이후 20일경 워싱턴으로 돌아와 이 본부장을 만나는 것을 감안하면 미중 간 대북 논의에 이어 한미가 협의에 들어가는 셈이다.
이번 한미 협의에서는 한미 간 소통 채널 강화도 심도 있게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연스레 한미워킹그룹의 명운에도 관심이 쏠린다. 김여정은 17일 담화에서 남북 협력의 장애물로 한미워킹그룹을 콕 집어 비난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한미워킹그룹에서 벗어나라’는 주문도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순기능도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워킹그룹은 북한의 비핵화와 함께 남북 협력사업들을 효율적으로 논의하는 한미 간 협의체”라고 했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018년 11월 출범 이래 워킹그룹을 통해 최종 제재 면제가 이뤄진 남북사업 12건 중 남북공동유해발굴사업 등 8건은 북한의 호응이 없어 중단됐다. 미국의 ‘제동’보다는 북한의 ‘무응답’이 주된 걸림돌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는 이번 한미 협의에 대해 공개적인 입장을 꺼리고 있다. 한껏 날이 선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미 워싱턴 덜레스공항에 도착한 이 본부장은 평소 출장 때와는 달리 “지금 말하면 안 된다. 죄송하다”고만 했다. 외교부 당국자도 예고 없이 방미가 진행된 것에 대해 “비공개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고 했다.
○ “트럼프, 대북 위기 공조의 대가 요구할 수도”
미 조야에서는 이번 기회에 느슨했던 한미 간의 대북 ‘2인 3각’을 재점검해 보자는 움직임도 나온다. 미 민주당 상원 동아태 소위 간사인 에드워드 마키 의원과 하원 동아태·비확산소위원회 위원장인 아미 베라 의원은 17일(현지 시간) 한미동맹 강화 법안인 ‘같이 갑시다(We Go Together)’를 발의할 예정이라고 미국의소리(VOA)가 보도했다. 두 의원은 “북한과 중국의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미 간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며, 대통령이 한미 상호방위조약 관련 정책을 바꾸려고 조치하기 전에 이에 대한 입증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밝혔다.
다만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깊숙이 대북 문제에 관여하거나 한미동맹 강화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미국에 북한 문제는 현재 중요치 않다. 북한이 손들고 나와서 협상 테이블에 임해 성과가 보장된다거나 북한이 미사일 발사 위협을 하지 않는 한 미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할 유인이 없다”고 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부 교수는 “한국이 아쉬운 소리를 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를 더 요구할 수도 있고 미중 갈등에 더 동참시킬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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