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 미뤘지만 원 구성 협상 재개할 가능성 낮아
통합당, '법사위 사수' 당내 여론 강해 재협상 명분 없어
냉각기 거친 후 상임위 선출 강행하면 등원 모색할 듯
19일 국회 본회의가 취소되면서 여야가 원 구성 협상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지만, 지금의 강대강 대치 전선이 금방 허물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여야는 당장 파국을 피했지만 상임위원장 선출을 한시적으로 유보한다고 해서 냉각 정국의 해빙 계기로 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마지노선을 제시하지 않고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원내 지도부 간 협상을 독려했지만, 되려 ‘협상의 시간’이 아니라 각자 대국민 여론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 더 골몰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은 15일 법제사법위원장 등 6개 상임위원장을 선출한 데 이어 19일 본회의에서도 교섭단체 대표 협의가 필요한 정보위원장을 제외한 남은 11개 상임위장 선출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나 불발됐다.
박 의장은 야당 원내대표 공백 등을 문제 삼아 본회의 취소라는 결단을 내렸다. 야당을 배제한 상임위 강제 배정으로 인해 급랭한 정국에서 ‘친정’ 민주당의 요구대로 또 다시 단독 본회의를 열어 상임위장 선출을 강행할 경우 정치권과 여론의 역풍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으로서는 본회의 불발로 ‘일하는 국회’ 풀가동 시점은 늦춰지게 됐지만, 여권 안에서도 상임위장 선출을 밀어붙여 야권 반발을 의식하는 기류가 없지 않았던 만큼 당분간은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를 통해 ‘거여(巨與)의 독주’ 프레임을 덧씌우려는 야권의 공세를 피하고, 인내의 시간을 거치면서 상임위장 선출을 다시 시도하기 위한 우호적인 여론을 모으는데 매진할 수도 있다.
민주당 김영진 원내수석부대표는 본회의 개의가 취소되자 “민주당은 양보할 만큼 양보했고,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야당의 결단을 촉구한다”며 통합당을 압박하는 동시에 유화 제스처를 취했다.
김 수석부대표는 현재 원내대표직을 내려놓고 칩거중인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를 향해 “어디 있는지만 알면 찾아뵙고 대화할 것”이라며 “여러 사항을 고려해서 찾아뵙기도 하고 연락드리기도 하고 노력해 나가겠다”고 적극적인 협상 의지를 내보였다.
이처럼 민주당이 원 구성 협상에 적극 나서면서 공은 통합당에 넘어왔다.
일각에선 코로나 사태, 안보 위기 등을 의식한 통합당이 협상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건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만큼 등원론에 힘을 실어주며 출구 전략을 모색하지 않겠냐는 관측도 있지만, 지금의 통합당 분위기만 놓고 보면 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통합당은 원 구성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법사위원장 재선출 및 상임위 강제배정 철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민주당이 이를 들어줄리는 만무하다.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내놓지 않는 한 협상은 없다는 게 통합당의 일관된 대여 투쟁 원칙이다.
이 때문에 이번 주말은 물론 다음 주에도 냉각기가 불가피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적지 않다. 김성원 통합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소속 의원들에게 “민주당의 21대국회 원구성 강행 및 국회의장의 상임위원 강제배정의 부당성을 주말동안 지역구 활동을 통해 널리 알려주시기를 당부드린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 ‘투쟁 지침’을 전달했다.
통합당 내에선 정국을 급랭시킨 정치적 부담은 민주당이 더 크게 오히려 공은 여당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민주당이 통합당을 압박하기 위해 외통위, 법사위, 기재위, 복지위 등 상임위를 소집하며 현안을 다루고 있지만, 야당의 참여 없이 민주당이 단독으로 소집한 ‘반쪽’ 상임위는 ‘당정협의’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상임위를 소집해도 실질적으로 중요 현안에선 정부 여당 간 시각차는 크지 않아 정부를 견제하는 입법부의 기능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역으로 일하는 국회를 표방한 민주당의 ‘부실 상임위’가 더 부각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당 내에선 사안에 따라 원 구성 협상과 별개로 외통위, 국방위 등 일부 상임위에만 선별적으로 복귀하자는 의견도 제기됐지만, 통합당은 자체 특위나 TF를 구성해 중요 현안을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여당과는 차별화된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입장이다.
통합당 배준영 대변인은 “저희는 정말 일하고 싶다. 일하고 싶은데 일할 수 없도록 만드는 프레임을 민주당이 만들었고 그러면서 ‘일하는 국회’라 말하는 행태에 자괴감을 느꼈다”며 “외교, 안보, 국방은 시급한 현안이 있기 때문에 저희 나름대로 매일 외교안보특위를 개최하고 브리핑할 것”이라고 이번 주말에도 쉬지 않고 특위를 열기로 했다.
배현진 원내대변인도 “박병석 국회의장께서 상임위 강제배분 같은 실타래를 하나 꼬아놓은 게 있는데 저희 입장은 기본 원칙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민주당과 박 의장께서 해놓으신 데 대한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기대한다”며 “문제를 풀어갈 공은 민주당과 박병석 국회의장께 있다”고 말했다.
통합당 원내 고위 인사는 “지금은 협상의 시간이 아니라 선택의 시간”이라며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포기하지 않으면 원 구성 협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치권 한편에선 통합당의 복귀 시나리오도 거론되고 있다.
원 구성 협상이 결국 무산돼 여당이 다음 본회의에서 일방적으로 상임위장을 선출할 경우 통합당이 대국민 성명을 내고 조건없이 등원하는 방안이 유력해보인다. 다만 당 내에선 가을 정기국회 전까지 냉각기를 계속 이어가면서 강경한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어 외통위, 국방위 등 일부 상임위에만 복귀하거나 국회 의사일정 전면 보이콧을 이어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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