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시계제로’에 놓이면서 정치권 안팎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가정보원을 비롯해 외교안보 수뇌부에 대한 인적쇄신 필요성까지 거론됨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다만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안보라인의 교체가 일시적으로 분위기를 돌리는 효과는 가질지는 몰라도,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인사가 최우선은 아니라는 판단에 무게가 실린다.
더욱이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향후 행동에 대한 ‘예고’를 해놓은 상황에서 책임 여부는 추후에 결정하더라도 우선 상황관리를 위해 그동안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와 향후 방향을 정립하고, 이후 그에 맞는 적임자를 찾는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 17일 남북관계 악화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명했고, 문 대통령은 이틀만인 19일 오전 10시40분 면직안을 재가했다.
문 대통령의 면직안 재가가 나기 전부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 이인영·송영길·우상호·홍익표 등 현직 의원들의 하마평이 나왔다. 여기에 김여정 부부장과 ‘돈독한’ 관계를 다져왔던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까지 거론됐다.
이에 더해 통일부 장관 인선을 신호탄으로 김여정 부부장이 특사 제안을 거절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도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대북전단 등 행위를 사전에 막지 못하는 등 외교안보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청와대 안보실과 국가정보원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을 통해 남북대화 동력을 다시 살려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오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향후에는 원포인트 인사인가, 전반적인 외교안보라인 교체인가’라는 질문에 “인선과 관련해서는 자세히 설명드리지 않는다”라며 함구했다. 전날(18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 역시 “(정의용 실장의) 사의표명이라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개각이나 청와대 개편으로 ‘당장’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보다는 전반적인 대북정책 방향을 재점검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관측이다. 청와대 참모진 교체나 개각은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의 방향성을 담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 인물을 교체하는 것보다 대응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해 2월28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던 당일,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날 것을 예상하고 대미관계를 담당할 국가안보실 제2차장에 김현종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임명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의제 협상이 끝난 후 이뤄지는 정상회담이 최종 결렬될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예측에 실패하면서 현재 청와대에 북한 전문가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게 된 인사로도 꼽힌다.
더욱이 한 번 신뢰한 인물에 대해 끝까지 믿음을 부여하고 ‘경질성 인사’를 지양하는 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고려할 때 이러한 관측에 힘이 실린다.
6·15, 10·4 남북정상회담을 기획한 경험이 있는 대북 전문가인 서훈 원장은 문 대통령 취임과 함께 국정원장에 임명됐다. 정의용 실장은 외교관 출신으로 2017년 북핵 위기 상황에서 외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임명됐다.
국가안보실장과 국정원장이 남북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있는 것은 맞지만, 두 사람 모두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부터 2017년 북핵 위기와 2018~2019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등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경험은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 위기상황을 극복할 ‘안정적인 인물’로 정 실장과 서 원장만한 경험을 가진 인물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 실장과 서 원장이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멤버’라는 점에서 경질성으로 인사가 단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문 대통령은 김연철 장관에 대한 면직안을 재가하기 전날인 18일, 김 장관과 만찬을 하며 김 장관의 사의 표명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듣고 최종 결정을 내렸다. 문 대통령의 배려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이뤄질 경우 북한에 잘못된 ‘선례’를 만들어 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지원 단국대 석좌교수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 국민도 국민이지만 북한에 ‘김여정 제1부부장이 한번 흔드니까 다 인사 조치되고 하더라’라는 나쁜 교육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점을 종합할 때 현재 공석이 된 통일부 장관 자리의 ‘원포인트’ 인사에 그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장관의 경우도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만큼 현재 국회 상황을 고려할 때 서두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통일부의 경우 당분간 서호 차관의 장관대행 체제로 움직일 전망이다. 서호 차관은 국가안보실 통일정책비서관을 지냈던 경험이 있어 문 대통령의 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호 차관의 내부승진도 가능한 시나리오로 꼽힌다.
문 대통령은 당장의 내각 공백을 메우고 책임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남북관계 이정표를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고심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2월28일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발판으로 이행하기 위해 천명했던 남북경협에 중심을 둔 ‘신(新)한반도체제’는 회담 결렬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후 상황을 고려해 지난 1월 신년사를 통해 선회했던 ‘남북 우선 협력’ 제안은 북한의 호응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만큼 큰 틀에서의 남북관계 방향에 대한 정립이 시급한 상황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