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통전부 대변인 담화…"역지사지 입장 똑같이 당해 봐야"
文대통령, 남북 변곡점마다 '역시사지'…4차례 공개 언급
김여정 첫 담화 '적반하장'과 개연성…南불신 3개월 전 시작
전문가 "김여정 첫 담화, 北 행동 터닝포인트…위험 경고등"
북한이 21일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대남전단(삐라) 살포 계획을 철회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거론한 것은 남북관계 파탄의 궁극적인 책임이 문재인 정부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주요 국면마다 북한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할 때 자주 강조하던 표현을 그대로 돌려줌으로 해서 완전한 단절을 거듭 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대남 기구인 통일전선부는 이날 노동신문에 밝힌 대변인 담화에서 전날 대남살포 중단을 촉구한 정부의 입장에 관해 “이미 다 깨져 나간 북남관계를 놓고 우리의 계획을 고려하거나 변경할 의사는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 남조선 당국자들이 늘상 입에 달고 사는 역지사지의 립장(입장)에서 똑같이 한번 제대로 당해보아야 우리가 느끼는 혐오감을 조금이나마 리해(이해)하고 그것이 얼마나 기분 더러운 것인지 똑똑히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우선 문 대통령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지 않은 것은 필요 이상으로 남북 간 긴장 수위를 높이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지난 17일 문 대통령의 6·15 20주년 메시지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던 김 부부장의 담화 때 청와대가 “매우 무례한 어조”, “몰상식한 행위”라며 정면 비판한 바 있다.
다만 통전부 대변인은 이날 ‘남조선 당국자’라는 표현을 빌려 비판의 대상이 문 대통령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주요 국면 때마다 북한의 전향적인 자세를 요구하기 위해 사용하던 ‘역지사지’를 그대로 돌려줬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 참여 의사를 알렸던 2018년 1월 수석·보좌관 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처음 언급한 뒤, 주요 국면을 앞두고 공개석상에서 총 4차례 ‘역지사지’를 반복 강조했다.
“그(남북 대화의) 성공을 위해서는 남과 북이 역지사지해 나가면서 차근차근 극복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2018년 1월22일·수보회의)”, “역지사지의 자세로 서로의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넘어서지 못할 어려움 없을 것(2018년 9월18일·평양 목란각·공식 환영 만찬)” 등이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은 또 “나는 미국이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와 입장을 역지사지 해가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조기에 재개할 것을 희망한다(2018년 9월18일·동대문 프레스센터·평양 방문 결과 대국민 보고)”, “(남북미는)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역지사지하는 지혜와 진정성을 가져야할 것(2019년 8월19일·수보회의)”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이토록 남북관계가 주요 변곡점을 지나는 계기 때마다 ‘역지사지’를 언급한 것은 대화의 불씨를 살려나가려는 절박한 인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북한 대남기구인 통전부 대변인이 이날 문 대통령의 표현인 ‘역지사지’를 거론하며 대남전단을 통해 자신들이 겪었던 혐오감을 곧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취지로 위협한 것은 자신들의 절박함을 알아달라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이는 다시 북한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첫 담화에서 언급했던 ‘적반하장’과도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함의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남측을 향한 신뢰를 거둔 결정적 계기가 비단 최근 ‘삐라’ 살포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읽을 수 있는 대목으로 관계 개선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정부에 중요한 시사점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김 부부장은 지난 3월3일 북한의 화력전투훈련 과정에서 발사한 초대형방사포를 두고 정부가 강한 우려와 함께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자 자신 명의의 첫 담화를 내고 “적반하장의 극치”라고 맞받았다.
자신들의 자위권적 차원의 훈련을 두고 청와대가 중단을 요구하자 공개적으로 맹비난 한 것이었다. 한미연합 군사훈련 유지, 첨단 군사장비 도입으로 군사적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조성하고 있는 남측이 훈련 중단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는 게 김 부부장 첫 담화의 핵심이었다.
이와 함께 문재인정부가 조건 반사적으로 자신들의 훈련에 우려를 표명하는 데에는 남북관계보다는 한미관계를 더 중시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서운함이 김 부부장의 담화에 깔려 있었다.
김 부부장은 “강도적이고 억지 부리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꼭 미국을 빼닮은 꼴”이라며 “동족보다 동맹을 더 중히 하며 붙어 살았으니 닮아가는 것이야 당연한 일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우리와 맞서려면 억지를 떠나 좀 더 용감하고 정정당당하게 맞설 수는 없을까”라면서 “정말 유감스럽고 실망스럽지만 대통령의 직접적인 립장(입장) 표명이 아닌 것을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공식 입장이 아닌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김 부부장의 메시지를 두고 상반된 분석이 공존한다.
하나는 북한이 남북관계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거두는 데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는 긍정적 평가이고 다른 하나는 김 부부장이 처음 나섰던 점에서 사실상 남북관계의 단절을 선언한 것이라는 부정적 평가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청와대 NSC 차원의 과잉 반응들이 정면돌파전으로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고 있는 자신들 앞에 일종의 ‘허들’이 돼서 대응을 하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라 판단했기에 김 부부장이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김 부부장의 첫 담화는 그동안 말로 대응했던 북한이 직접 행동에 나설 것을 결심하게 된 일종의 터닝 포인트 역할을 했을 수 있다”며 “대화의 신호가 아니라 진짜 위험한 경고등이었는데 정부가 잘못 해석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여권 관계자는 “3월에 있었던 김 부부장의 첫 담화는 ‘역지사지’를 해달라는 의미로 풀이 해볼 수 있다”면서 “지난해 6월 남북미 3자 정상회동 이후 왜 남측이 남북 정상 간 합의 이행을 위해 조금 더 용감하게 나서주지 않느냐는 문제의식을 가졌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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