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돌연 ‘보류’하고, 매체들이 대남 비난 수위를 조절하고 나선 것에 대해 북한이 그동안의 압박정책을 통해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판단하고 숨고르기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까지의 ‘남쪽 때리기’가 내부 여론 결집은 물론 한국의 대북정책을 자신들에게 더욱 유리한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데 적절한 수준이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북한은 24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담화를 통해 남쪽의 ‘차후 태도와 행동 여하’에 따라 정세가 다시 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사실상 언제든 대남 압박을 재차 가할 수 있다고 협박했다.
○ ‘南 정책 전환 분위기’에 “실익 얻었다” 판단
무엇보다 대북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북한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확산되는 내부 동요를 대남 비난으로 관리했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코로나19 등 내부 사정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 대남 공세를 강화해 온 측면이 있다. 이제 주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고 북한 지도부가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본격적인 군사행동으로 수위를 높였을 경우 주민 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이 시점에서 선을 넘지 않았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교수는 “경제 중심의 정면돌파전에 북한이 매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도하게 대외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 긍정적이지 않다고 (김정은이) 생각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더불어 북한이 대북 전단을 남북 관계 파탄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 데 대해 정부 및 여당이 적극적으로 대북 문제를 관리하겠다는 자세를 보인 것도 북한의 ‘보류’ 결정의 배경으로 해석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한국) 정부가 이번 기회에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강력하게 규제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으므로 북한도 일정한 실익을 거두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추가적 ‘대남 때리기’는 향후 한국 정부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지원 규모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이 여권 지지층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킨 측면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 北, 김영철 담화 통해 ‘도발 재개 가능’ 신호
김정은을 움츠러들게 한 것은 2018년 비핵화 프로세스 시작 후 가장 강도 높은 미국의 군사적 압박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일본 요코스카(橫須賀) 해군기지가 모항인 로널드레이건함 말고도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2척은 21일부터 필리핀해 일대에서 훈련을 시작했으며, 최근엔 B-52 전략폭격기가 한반도 일대를 비행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추가 군사 도발을 감행할 경우 한미 연합훈련 확대 및 미국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증가의 명분을 제공할 수 있어 북한 입장에선 자충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미래통합당 태영호 의원은 24일 페이스북에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복구를 검토 중이라고 하자마자 김정은이 군사행동을 보류한다 했다”고 적어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복구 고려가 북한의 자제로 이어졌다는 해석을 내놨다.
하지만 북한의 ‘숨고르기’에도 남북 관계 개선은 여전히 요원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실제로 김영철은 24일 담화에서 “(현재는) 남조선 당국의 차후 태도와 행동 여하에 따라 (남북) 관계 전망에 대해 점쳐볼 수 있는 (때)”라며 “‘(군사행동) 보류’가 ‘재고’로 될 때는 재미없을 것”이라고 밝혀 추후 대남 압박 수위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의 “(북한은) 대남 군사행동을 철회해야 한다”는 발언을 지목해 불만을 표한 것이지만 사실상 북한의 내부적 필요성에 따라 언제든 대남 강경책을 다시 꺼내들 수 있음을 알린 것이다. 차두현 연구위원은 “북한이 대화 무드로의 급선회를 고려했다면 애초에 남쪽과 ‘대적 관계’로 가겠다고 노동신문 등에 광범위하게 공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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