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유해 70년 만에 고국 품에…1차 북미 정상 합의 '첫 단추'
9·19 평양 선언으로 北→美→南…전사자 유해 송환 길 완성
최고 예우 약속한 文대통령…유해 봉환식으로 6·25 행사 참석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6·25전쟁 70주년 행사 참석을 통해 6·12 싱가포르 제1차 북미 정상회담 결과물인 ‘센토사 합의’ 정신을 소환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행사에서 봉환(奉還)된 6·25전쟁 국군전사자 유해 147구를 맞이할 수 있었던 건 센토사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쟁 실종자들의 유해 수습을 약속한 북미 정상 간 합의 내용이 이어진 남북 정상 간 9·19 평양공동 선언(남북공동유해발굴)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를 약속한 남북미 정상의 정신이 70주년 행사에 녹아있다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8시20분 국가보훈처 주최로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 격납고에서 거행된 6·25전쟁 제70주년 행사에 참석했다. 정부가 주관한 중앙 행사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2010년·제60주년 행사) 이후 두 번째다.
6·25전쟁 기념 행사는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민족 비극이 시작된 날을 대통령이 직접 기념할 수 없다는 취지에 따라 그동안 매년 국무총리 참석 행사로 이뤄져왔다.
대통령은 이와는 별도로 참전용사 위로연을 주재해 전쟁의 상흔(傷痕)을 딛고 오늘날 대한민국 건설에 이바지한 데 따른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2010년 제60주년 기념 행사를 재향군인회가 아닌 국가보훈처가 처음 주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것이 유일한 사례였다.
문 대통령이 이러한 역사적 맥락 위에서도 70주년 행사의 참석을 결정한 데에는 국군전사자 유해봉환에 더 큰 의미를 뒀기 때문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전쟁 발발일을 기념하는 게 아니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산화(散花)한 영웅을 최고의 예우로 맞이한다는 데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앞서 한미는 지난 23일(현지시각) 미국 하와이 진주만·히캄 합동기지에서 국군전사자 유해 인수식을 열고 합동감식을 통해 발굴한 147구의 유해를 70년 만에 고국인 한국으로 봉환했다. 공군 공중급유기 시그너스(KC-330)에 모신 유해는 전날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이번에 봉환된 147구의 유해는 북한의 개천시, 운산군, 장진호 일대에서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발굴된 유해 208개 상자 가운데 일부분이다. 1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북한에서 미국으로 송환됐고, 이 중 한미가 유해 55개 상자 분량을 2차례 공동감식(2019∼2020년)을 통해 최종 국군유해로 판정했다.
북한 땅에 잠들었던 호국영웅들이 미국을 거쳐 70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올 수 있던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제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데에서 출발했다.
북미 정상은 크게 4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른바 ‘센토사 합의’ 마지막 조항에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신원이 이미 확인된 전쟁포로, 전쟁 실종자들의 유해를 즉각 송환하는 것을 포함해 전쟁포로, 전쟁 실종자들의 유해 수습을 약속한다’는 문구를 포함시켰다.
이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석달 뒤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른바 ‘9·19 평양 공동선언’과 부속합의서인 ‘남북 군사분야 합의’에서 ‘쌍방은 비무장지대 내에서 시범적인 남북유해공동발굴을 진행하기로 했다(2조3항)’는 문구를 담았다.
북미 정상 간 센토사 합의를 통해 북한이 미확인 실종자들의 유해를 수습해 미국으로 송환할 수 있었다면 남북 정상 간 9·19 합의로 국군전사자 유해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70년 전 전쟁이 벌어졌던 그 날에 호국영웅이 우리 품으로 돌아오게 된 슬픔과 기쁨이 교차 순간을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이 모두 남북미 정상이 지난 2018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특히 최근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 공동 선언 파기를 강하게 시사한 가운데 2년 전 남북미 정상 간 합의 정신을 새롭게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라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윤재관 청와대 부대변인은 “이번 유해봉환은 남북미 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다”며 “DMZ 구역 남북 공동 유해발굴사업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으로 연결되면서 북한 지역 내 전사자 유해 인계 관련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