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북한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다. 대외적인 명분은 알려진 대로 대북전단 살포였다. 곧이어 대남전단 1200만 장 살포까지 예고했고, 이에 맞서 탈북민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은 “22일 대북전단 50만 장을 기습 살포했다”고 주장했다. 총칼 없는 ‘삐라 전쟁’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21세기에도 이어지는 형국이다.
삐라는 전단이나 벽보를 뜻하는 영어 ‘빌(Bill)’이 일본어 ‘삐루’로 바뀐 게 어원이란 설이 일반적이다. 6·25전쟁 이후 70년간 삐라도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해 왔다. 최근엔 드론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의 기술을 도입해 살포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요즘은 ‘종이폭탄’이라 불리기도 한다. 적군의 마음을 동요케 해 전쟁 능력을 떨어뜨리고 심리적 타격을 준다는 의미를 담았다.
○ 삐라의 사회학-남북 정치 경제 상황이 고스란히 반영
대북전단 전문가들은 6·25전쟁 시기부터 남북의 전단 살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전쟁 당시 유엔군이 뿌린 대북전단은 약 25억 장, 북한군이 뿌린 대남전단은 약 3억 장으로 추정된다. 이때가 양측이 삐라를 가장 많이 뿌렸던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 삐라는 큰 종이에 신문 형식으로 제작된 ‘뉴스 삐라’가 주를 이뤘다. 상대방이 승리를 기대했던 전선에서 나온 암울한 소식이나 자기들에게 유리한 소식을 담는 게 통상적이었다. 당연히 적의 사기를 저하시키려는 목적이 컸다. ‘안전보장증명서’라는 걸 뿌리기도 했다. “항복하면 살려주겠다”며 귀순자의 안전 보장을 증명하는 문서였다고 한다.
1960, 70년대는 서로의 체제를 선전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대북전단에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나 ‘경부고속도로 개통’ 등 산업화의 성공을 드러내는 내용이 많이 실렸다. 가족들이 여유롭게 바닷가에서 피서를 즐기는 모습 등을 사진으로 담기도 했다.
북한도 자신들이 잘사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경제력이 나쁘지 않았던 북한은 체제 경쟁에서도 우위를 차지했다고 자신했다. 실제로도 북한 주민이 살아가는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담은 삐라를 남쪽으로 보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며 남북의 경제적 격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자 북한의 삐라는 정치적 이슈로 돌아섰다. 특히 남한 지도자들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앞세웠다. 선전보다 선동에 가까워졌다. ‘전두환 군사독재 치하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한 국민들이 들고 일어서야 한다’ 등 전두환·노태우 정부를 비방하는 내용이었다. 해외 언론이 5·18민주화운동의 실상을 보도한 사진도 자주 곁들였다고 한다.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은 “당시 남한도 체제 우위를 내세운 내용의 전단을 연평균 1억 장가량 지속적으로 살포했다. 또 동유럽 북한 유학생들의 탈북이 대거 이어졌는데, 남한의 탈북 유학생 사진을 전단에 적극 활용했다”며 “남북의 정치적 경제적 시대상이 삐라에도 큰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 삐라의 정치학-남북관계 삐걱댈 때마다 카드로 떠올라
남한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상호 비방 중단에 합의한 뒤 2004년부터 국가 차원의 삐라 살포는 실질적으로 중단했다. 하지만 탈북민단체와 종교단체 등 민간의 대북전단 살포는 여전히 이어졌다. 주로 북한의 세습 체제를 비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출생과 여자관계, 사치스러운 생활 등을 비판하는 내용도 많았다.
남북이 갈등을 빚을 때마다 삐라는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등 북한의 대남 도발이 잇따르자 국방부는 일시적으로 대북전단 40만 부를 살포했다. 2014년에는 대북전단을 둘러싸고 남북 간 총격전이 벌어지는 일촉즉발의 상황도 발생했다. 북한이 대북전단이 담긴 풍선을 향해 고사총을 쏜 것이다. 남한도 북한군 초소 일대에 기관총 사격을 가하는 등 양측의 총격전이 이어졌다. 한 정부 관계자는 “2016년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자 국방부는 또다시 전단 살포를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전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삐라 전쟁’은 잠잠해진 것처럼 보였다. 남북이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에서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한다”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달 들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다시금 삐라 전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요즘은 정보기술(IT)이 발달해 삐라의 전달 형태와 살포 방식도 진화해왔다. 탈북민 민간단체는 비닐 재질로 제작한 전단을 대형 풍선에 띄워 보내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풍선 안에는 전단 외에도 휴대용저장장치(USB)와 SD카드 등을 함께 담아 보낸다. 여기엔 한국 드라마와 영화, 한국의 경제 발전상, 한국 가수들의 공연 등도 담겨 있다고 한다.
대북풍선단 이민복 대표는 “USB에 6·25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다큐멘터리를 꼭 넣는다. 북한 주민의 가치관을 흔들 수 있는 사실 전달에 집중하는 편”이라고 했다.
○ 삐라의 과학―진짜 150km도 날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 대북전단은 정말로 약 150km를 날아가 평양 시민들에게 당도할 수 있을까.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실제로 “올해 4월 드론을 사용해 대북전단 1만 부를 평양으로 보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가능은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반응했다. 이동준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전단 1만 장이 실리는 무게를 지탱하려면 흔히 접하는 프로펠러가 4개 달린 드론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게다가 평양까지 드론을 조종하는 건 몇몇 드론 전문가가 아니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한다.
방법이 없진 않다. 기체 길이 3m가 넘는 비행기 형태의 대형 드론(픽스드 윙)을 쓰고 자율비행의 조종이 가능한 전문 업체의 도움을 받는다면 해볼 만하다. 이 교수는 “대당 비용이 최소 5000만 원 정도 들 것”이라고 했다.
GPS를 이용해 전단을 매단 애드벌룬의 위치를 추적하는 건 가능할까. GPS장치 업체 ‘케이엔시택’의 박상호 부장은 “만약 스마트폰 통신기를 풍선에 집어넣었다면 불가능하다. 기지국 범위를 벗어나면 수신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역시 방법이 없진 않다. 상당히 고가인 ‘위성 통신모듈’ 제품을 사용했다면 평양처럼 먼 거리라도 GPS 추적이 가능하다. 이 제품은 개당 적어도 300달러(약 36만 원)로 알려져 있다.
기술이 뒷받침되더라도 제일 중요한 건 기상 조건이다. GPS 기술을 활용해도 바람과 기압 패턴 등이 정확히 맞아떨어져야 평양까지 갈 수 있다. 이 때문에 애드벌룬을 하늘에 띄워도 실제로 북한에 가는 건 일부일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상전문가는 “대기 상층부는 바람이 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불어 삐라는 일본 방향으로 갈 확률이 높다”며 “기상 환경이 수시로 바뀌어 정확하게 예측해 북한으로 삐라를 보내려면 매우 고차원적인 시기 예측이 필수”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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