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오전 6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지하 1층. 국회 상임위원회에 배분을 놓고 의원들 사이에서 가벼운 설전이 이어졌다. 자신이 신청한대로 상임위 배분을 받지 못한 A의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정류장을 벗어난 버스였다. 그럼에도 A의원은 자신의 목소리를 원내 지도부에 건낼 수 있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이 의원들의 만남이 이뤄진 곳은 ‘남성의원 건강관리실’로 이름 붙여진 국회 내 목욕탕. A의원은 “마침 목욕탕에서 봤기에 내가 한 마디 했다”고 말했다.
이 곳은 국회의원들에게만 허용된 공간으로 목욕탕 이외에도 헬스장과 사우나, 이발소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국회는 다양한 형태의 ‘특권 내려놓기’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빠득한 국정에 지친 의원들의 심신을 달래줄 휴식공간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그런데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이 공간이 형평성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국회 사무처는 올해 3월 3일 남성·여성의원 건강관리실과 직원 건강관리실을 모두 폐쇄했다. “코로나19 감염자가 급증해 다중이용시설 이용 시 감염의 우려가 증가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또 “개선될 때까지 이용을 일시 중지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회의원 건강관리실 폐쇄는 공지한 지 일주일도 안 돼 없던 일이 됐다. 미용실과 이발소 등을 이용하게 해달라는 의원들의 요구가 잇따르면서 다시 문을 연 것. 이후 이곳은 문전성시다. 한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주로 새벽 6시부터 7시 사이에 의원들이 가장 많이 이용을 한다”며 “보통 운동을 포함해 1시간 정도 머문다”고 말했다. 여성의원들의 건강관리실 사용 패턴도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다른 의원은 “주로 아침 8시 이전에 의원들이 온다”며 “많으면 10명 안팎이 한꺼번에 몰릴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8000원만 내면 머리를 손질할 수 있기 때문에 건강관리실을 찾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문제는 직원 건강관리실은 그대로 폐쇄된 상태라는 점이다. 이에 국회 보좌진 사이에선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한 보좌관은 “의원들은 건강관리를 하고, 보좌진은 무더운 날씨에 씻을 만한 곳도 마땅치 않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또 다른 보좌관도 “직원 건강 관리실 개점시기는 아직도 언급이 없다. 도대체 연제쯤 열리는 것이냐”며 짜증 섞인 반문을 쏟아냈다.
국회 사무처는 이런 상황에 대해 ‘밀집도’가 개점과 폐점을 가르는 기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무처 한 관계자는 “의원 건강관리실은 상대적으로 이용자가 적어 밀집도가 낮고, 코로나19 확산 우려도 낮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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