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아버지’ 빈소 찾은 전쟁고아들… “그분을 만난 건 행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故 백선엽 장군 15일 영결식]

故 백선엽 장군 추모 행렬 육군장으로 치러지는 고 백선엽 장군의 장례 나흘째인 14일 서울 광화문광장 시민분향소에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분향소에는 이날 오전까지 2만여 명이 다녀갔다. 15일 진행되는 백 장군의 영결식에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 서욱 육군참모총장,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영결식 뒤 백 장군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故 백선엽 장군 추모 행렬 육군장으로 치러지는 고 백선엽 장군의 장례 나흘째인 14일 서울 광화문광장 시민분향소에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분향소에는 이날 오전까지 2만여 명이 다녀갔다. 15일 진행되는 백 장군의 영결식에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 서욱 육군참모총장,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영결식 뒤 백 장군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 10일 별세한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예비역 육군 대장)의 영결식이 15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육군장으로 열린다.

서욱 육군참모총장(장의위원장) 주관으로 오전 7시 30분부터 50분간 유족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 역대 육군총장 등 각계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약력 보고, 추모 영상 시청, 조사 및 추도사 순으로 진행된다. 이어 고인은 군사경찰 차량의 호위 속에 국립대전현충원 제2장군 묘역으로 운구돼 오전 11시 반 안장식을 갖고 영면에 들어간다.》

“장군아버지….”

6·25전쟁 때 가족을 잃은 최모 씨(78·여)는 조화가 들어서기도 전인 11일 이른 아침 백선엽 장군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그는 영정 사진이 놓인 빈소에서 헌화를 하며 눈물을 훔쳤다.

최 씨는 조문을 마친 뒤 접견실에서 백 장군의 부인 노인숙 여사(96)를 만나 “어머니, 앞으로도 효도하겠습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이날 빈소를 찾았던 박모 씨(75)도 기자에게 “아버지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게 해준 영웅”이라고 말했다.

최 씨와 박 씨는 각각 9세, 6세이던 1951년 겨울, 국군의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때 부모를 잃었다. 살던 마을이 완전히 불타 오갈 곳 없었던 두 사람은 백 장군이 세운 보육원(백선고아원)에서 자랐다. 당시 30대였던 백 장군은 눈밭에 버려진 전쟁고아들을 위해 자비를 들여 지리산 일대 일본인 소유 적산가옥 부지를 매입했다. 보육원에 모인 200여 명 대부분이 열 살도 안 된 고아들이었다.

1951년 12월 25일 백선고아원에 머물던 아이들이 광주 상무대 비행장에 도착한 백선엽 장군을 둘러싸고 환영하는 모습. 유족 관계자 제공
1951년 12월 25일 백선고아원에 머물던 아이들이 광주 상무대 비행장에 도착한 백선엽 장군을 둘러싸고 환영하는 모습. 유족 관계자 제공
1952년 보육원이 문을 연 뒤 미8군과 기독교 단체인 선명회 등으로부터 옷가지와 음식 지원이 이어졌고 고아들은 고교 과정까지 이수할 수 있었다. 백 장군은 지리산에 숨어든 빨치산(공산 게릴라)을 토벌하는 책임자였다. 토벌 과정에서 마을이 불타 부모를 잃었지만 고아들은 백 장군을 원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 씨는 “모두가 살기 힘들었던 시절 (보육원에서 자란 건) 운이 좋았다. 그만큼 풍족하고 따뜻했다”고 회상했다.

고인은 한국군 최초로 4성 장군에 오른 뒤에도 종종 보육원을 찾았다. 최 씨는 “아버지는 오실 때마다 아이들을 두 팔로 부둥켜안고 반가워했다”고 기억했다. 보육원 출신들이 아직도 백 장군을 “장군아버지” “대장아버지”로 부르는 것도 보육원 인근 광주 상무대 비행장에 도착한 고인을 마중 나간 기억 때문이다. 박 씨는 “장군 특유의 과묵함이 있었지만 수많은 전투를 치른 군인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인상이 선했다”고 회상했다.

최 씨와 박 씨는 6·25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봄 이후 50여 년이 흐른 뒤에야 백 장군과 다시 만났다.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부모를 잃은 사실을 자녀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수십 차례 주저했기 때문이다. 박 씨는 “혹여나 아버지를 찾으면 그분께 폐가 되지 않을까 염려해 엄두조차 못 낸 점도 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신문에 나온 아버지를 보고 (고인 사무실이 있던) 전쟁기념관으로 불쑥 전화를 걸었더니 ‘○○예요’라는 말에 바로 기억을 하시더라”며 감격해했다.

보육원 출신들이 만든 ‘백선회’ 회원이기도 한 두 사람은 6·25전쟁 60주년이었던 2010년 5월 8일 어버이날 백 장군과 다시 만난 순간을 또렷이 기억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백선회 회원 10여 명은 고인을 만나 “그동안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며 고인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박 씨는 “아버지는 연신 ‘잘 성장해줘서, 건강하게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최 씨와 박 씨는 10일 고인이 별세한 뒤 생각날 때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시민분향소를 찾았다. 14일 분향소 앞에 선 두 사람은 200m 이상 늘어선 추모객들을 보며 뿌듯해했다. 이들은 15일 안장식이 열리는 국립대전현충원도 찾아 고인의 넋을 기린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백선엽 장군#영결식#6·25전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