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을 불과 100여 일 앞둔 시점에 주한미군 감축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한 백악관·국방부의 움직임을 다룬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이어 해외주둔 미군의 재배치 계획에 대한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의 언급까지 나오면서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17일(현지 시간) WSJ에 따르면 국방부는 주한미군을 포함해 전 세계의 해외주둔 미군을 철수(감축)시키기 위한 여러 방안을 마련해 올해 3월 백악관에 제시했다. 아시아 뿐 아니라 유럽 아프리카 중동 모두 대상에 포함됐다. 그러나 WSJ는 특히 주한미군의 감축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긴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독일에 이어 한국에서의 미군 감축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한미군 감축 문제가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인 현안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미 국방부가 WSJ 보도에 대해 “언론의 추측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며 부인하지 않은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오히려 “우리는 전 세계 미군 배치 태세를 일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해외 주둔 재배치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협정(SMA) 협상에서 한국의 증액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주한미군 감축을 언급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보다 큰 틀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해외주둔 재배치 구상의 일환으로 검토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한미국 감축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에스퍼 국방장관은 같은 날 배포한 국가국방전략(NDS) 이행 보고자료에서 “앞으로 몇 개월 내에 인도태평양사령부 등 몇몇 전투사령부의 미군 재배치 문제에 대한 검토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태평양사령부에는 주한미군이 속해 있다. 이어 “백지상태에서 각 전투사령부가 기존 임무와 태세를 통합,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에스퍼 장관 취임 이후 1년간 NDS의 이행 성과를 정리한 이 자료에서 주독미군 9500명의 감축은 유럽사령부(EUCOM)의 이행실적 중 하나로 소개됐다.
미 의회에서는 여야 모두 비판과 우려를 쏟아냈다. 마크 그린 공화당 하원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우리도 한국을 필요로 하고 한국도 우리를 필요로 한다”고 지적했다. 벤 새스 공화당 상원의원도 “이런 종류의 전략적 무능은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했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시절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비꼬았다. 민주당 소속 애덤 스미스 하원 군사위원장은 한 온라인 세미나에서 “주한미군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한국에 일방적인 혜택을 주기 위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감축에 대한 미국 내 여론도 부정적이다. 웨스턴켄터키대학 산하 국제여론연구소(IPOL)의 티머시 리치 교수 연구팀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 응답자의 42.9%는 반대, 26.8%는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전 세계 주둔미군의 운영과 관련한 트럼프 행정부의 검토 및 점검은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작업”이라며 “주한미군의 감축과 관련해 현재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논의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크게 밀리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정치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밀어붙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처 실무자들의 의견과 다르게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한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달 초 주독미군 감축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각서 형식으로 진행될 때까지 국방부 및 외교안보 라인의 고위 당국자 대부분이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사국인 독일 역시 관련 내용에 대한 협의는커녕 통보조차 받지 못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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