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1, 2위를 달리는 민주당 이낙연 의원과 같은 당 소속 이재명 경기 지사 간의 신경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발단은 이 지사가 촉발한 내년 4월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부산시장 후보 공천 여부다. 당 안팎에서는 차기 대선을 노린 두 사람의 경쟁이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그간 서울·부산시장 후보 공천 문제에 대해 말을 아꼈던 이 의원은 21일 라디오에서 “(공천 여부를) 지금부터 당내에서 논란을 벌이는 건 현명하지 않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고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당내서 왈가왈부하는 게 현명한가”라고 말했다. 이재명 지사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이 지사의 재보선 무공천론을 겨냥한 것이다. 이 지사는 전날 민주당이 서울·부산시장 공천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두 사람의 신경전은 비단 공천 문제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저도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장남으로 자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앞서 이 지사가 이 의원을 “엘리트 대학 출신”이라고 칭하며 ‘흙수저 대 엘리트’ 구도를 만든 것에 대한 응수다. 이 의원과 가까운 한 인사는 “가난한 집안 사정 탓에 이 의원은 ‘안 죽으려면 가야지’ 싶어 군대에 입대했을 정도”라며 “그런데도 이 지사가 ‘흙수저 대 엘리트’ 프레임을 만든 것에 이 의원이 상당히 불쾌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이라는 한 배에 타고 있지만 두 사람은 “성(姓)씨 빼고는 모든 것이 다 다르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상반된 캐릭터다. 이 의원은 ‘엄중 이낙연’이라는 별칭이 보여주듯이 신중하고 진중한 언행이 트레이드마크다. 이 의원이 총리 시절 보여준 차분한 이슈 대응력과 맞물려 ‘문재인 정부 인사 중 가장 안정감이 있다’는 평가를 낳게 한 핵심 정치적 자산이다. 하지만 총리를 마친 후에는 ‘지나치게 진중한 것 아니냐’는 말도 없지않다. 한 민주당 의원은 “속내를 쉽게 밝히지 않는 진중함이 중도·보수 진영 지지층에게 어필하는 효과도 있지만 동시에 다소 답답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 지사와 비교해 보면 더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반면 치고 빠지는 아웃복서 스타일의 이 지사는 각종 현안에 대해 빠르고 거침없이 의견을 밝히고 있다. 내년 4월 서울 부산시장 재보선 공천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제가 답변을 회피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며 거침없는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이 지사와 가까운 한 의원은 “성남시장 시절 스스로 ‘변방의 사또’라고 했던 이 지사가 지금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거침없는 발언이었다”며 “다만 정치적 무게감이 높아진 만큼 언행에 신중해야 한다는 주변 의견도 많고, 이 지사도 이 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해찬 대표도 이 지사의 무공천 주장에 대해 “그렇게 말하면 계속 시끄럽다. (이 의원이) 답변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연관 정도가 서로 다른 것도 차이 중 하나. 이 의원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올해 1월까지 역대 최장수 총리로 일했다. 반면 이 지사는 성남시, 경기도를 거쳤지만 청와대와는 거리가 있었다. 여권 관계자는 “이 지사와 달리 이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공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임기 후반 문 대통령의 지지율 변동에 따라 이 의원과 이 지사의 대결 구도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택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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