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LG화학 배터리연구소장(사장)은 지난해 5월 독일 폭스바겐그룹 본사에서 만난 한 최고위급 임원에게서 이 같은 말을 들었다. LG화학 배터리가 탑재된 아우디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 ‘E-트론 EV’를 시승하는 자리에서였다. 이 임원은 “우리만 아니라 제너럴모터스(GM), 포르셰 등 세계 유명 브랜드가 자신들의 첫 양산형 전기차에 한국 전기차 배터리를 탑재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믿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지난해 유럽에 이어 이달 초 국내에 출시해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아우디 E-트론 EV의 핵심 경쟁력은 ‘K배터리’에 있다. 이 차는 1회 충전으로 400km 이상을 간다. 김 소장은 “글로벌 최대 자동차 기업인 폭스바겐그룹이 우리 배터리를 탑재한 건 수십 년 동안 쌓아온 한국의 배터리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27일 산업계에 따르면 K배터리는 올해 1∼5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34.7%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특히 LG화학은 중국 CATL을 누르고 세계 시장에서 1위로 올라섰다. 2009년 GM 배터리 공급사로 선정된 LG화학, 같은 해 BMW그룹 전기차 공동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한 삼성SDI에 이어 2018년 폭스바겐 배터리 공급사로 선정된 SK이노베이션까지 K배터리 회사들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전 세계에서 전기차 배터리를 양산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 중국, 일본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위축된 올해는 한국만 플러스 성장했다. 연구개발(R&D)에 대한 선제적 투자, 글로벌 생산체계 구축, 완성차 업체들과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이라는 ‘3박자’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K배터리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기술력이 높지 않아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이 없었다. 일찍이 시장을 장악한 일본 등의 견제도 심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R&D에 집중하며 장기전에 돌입했다. 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화학공학부 교수는 “최근 K배터리 성과는 1990년대 이후 전지시장을 장악하던 일본 업체들을 20년 만에 누르고 독자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다. 코로나19가 앞당긴 글로벌 산업 지형의 변화를 K인더스트리가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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