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청문보고서 與 단독 채택에…“巨與체제, 민주주의의 위기 초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8일 17시 12분


국회 정보위원회는 28일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종료된 지 불과 17시간 만에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야당의 추가 검증 요구에도 여당이 하루도 기다리지 않고 일사천리로 청문보고서를 처리하자, 정치권과 학계에선 “176석 거여(巨與)체제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통합당 정보위원들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박 후보자의 6·15 남북정상회담 이면합의서에 대한 진위 확인과 학력 위조 의혹에 대한 교육부 조사가 이뤄져야 청문보고서 채택을 논의할 수 있다”며 채택 연기를 민주당에 요구했다. 정보위원인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기자들을 만나 “(북한에 대한 25억 달러 지원 내용에 담긴 합의서는) 신뢰할만한 전직 고위공무원에게 입수했다”면서 “문건이 진짜면 평양에 한 부 있을 것이고 청와대, 국정원에 보관돼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서훈 (2000년) 당시 국정원 과장이 지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있어서 확인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고, 확인했다면 밝히는 게 대통령의 의무”라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민주당은 야당의 요구를 일축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이날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여당 의원의 질의에 “(박 후보자의 학력 위조 의혹은) 55년 전 일이고 학적부나 학위와 관련해 확인해 줄 수 있는 당사자들이 아무도 없다. 조사의 실효적인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이어 청와대나 국정원이 아닌 박 후보자는 직접 입장문을 내고 “이미 (2000년 당시) 대북특사단에 문의한바 ‘전혀 기억에 없고 사실이 아니다’라는 확인을 받았다”고 반박했다. 이어 “제보했다는 전직 고위공무원의 실명을 밝혀라”면서 “합의서는 허위·날조된 것으로 주 원내대표에 대해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역공을 펼쳤다.

곧바로 민주당은 통합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정보위를 단독으로 열어 청문보고서를 채택했다. 정보위는 민주당 의원은 8명, 통합당은 4명에 불과하다. 민주당 정보위 간사인 김병기 의원은 “문서(합의서)의 진위여부는 조기에 밝혀지지 않는 상황인데다 야당도 별다른 다른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를 고려해서 보고서 채택을 연기할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주 이인영 통일부 장관 인사청문보고서도 청문회가 열린 다음날 단독으로 처리한 데 이어 국정원장 후보자 청문보고서도 압도적 과반 의석을 무기로 속전속결로 처리한 것. 통합당은 “이면합의서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며 격렬히 반발하고 있어 정치적 후폭풍을 예고했다.

학계에서도 우려가 터져 나왔다. 경희대 허영 석좌교수는 “거대여당이 국회를 지배하면서 입법부의 청와대 하명기관화가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민주화 이전에도 다수당이 지금처럼 안면몰수하지는 않았다”고 비판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