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나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규정하고 ‘자위적 핵 억제력’을 언급하자 북한이 향후 북-미 협상이 재개될 경우 ‘핵군축 협상’에 나서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요구대로 북한이 일방적으로 비핵화를 해야 하는 협상은 이제 불가하고, 양국이 핵보유국이라는 동등한 지위에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새로운 계산법’을 재차 요구하고 나선 것. 11월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 하락으로 궁지에 몰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겨냥한 ‘지금이라도 우리를 움직일 카드를 던지라’는 압박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 한미에 “비핵화 협상 불가” 강력 메시지
김 위원장은 이날 전국노병대회 연설에서 “(북한은) 온갖 압박과 도전들을 강인하게 이겨내며 핵보유국으로 자기 발전의 길을 걸어왔다”며 “우리의 믿음직하고 효과적인 자위적 핵 억제력으로 하여 이 땅에 더는 전쟁이란 말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2018년 비핵화 협상이 시작된 후 공개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밝힌 것은 처음이다. ‘핵전쟁 억제력’이 가장 최근 언급된 건 김 위원장이 주재한 올 5월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였으나, 이 자리에서도 ‘핵보유국’ 표현은 거론되지 않았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는 행보가 이번 연설을 통해 확인됐다”며 “핵보유국 지위에 걸맞은 협상의 틀이 갖춰지기를 미국에 계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앞으로 핵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란 말을 간접적으로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북한이 ‘비핵화 협상’이 아닌, 핵보유국 간 핵무기를 감축하는 ‘군축 협상’을 미국에 요구하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이날 발언은 최근 이어져온 북한의 강경한 협상 태도의 연장선상에 있다. 외교 당국자는 “북한 입장이 이미 상당히 강경해진 상황이다. 김정은 발언으로 더더욱 이 같은 협상 전망이 크게 변한다고 보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북한의 경직된 태도가 이어지며 11월 미 대선 전 북-미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은 계속 낮아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으로 점차 수세에 몰리는 상황에서 북한의 압박이 역으로 트럼프의 ‘도박꾼 기질’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보유국’ 언급을 보고 ‘무언가라도 빨리 해야 하지 않느냐’는 시급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와 즉흥적 성향을 고려해 일종의 ‘미끼’를 던졌다”고 해석했다.
한국 입장에선 북한의 ‘핵보유국’ 언급은 그러지 않아도 먹구름에 싸인 남북 관계에 추가적인 악재가 될 수 있다. 추후 협상 목적이 핵보유국 간의 군축 협상이라는 점을 시사하며 ‘남쪽은 빠지라’는 메시지를 재차 던졌다는 평가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김정은이 이번 연설에서 “당분간 대남관계에서 물러섬이 없을 것을 시사했다”고 분석했다.
○ 북, 핵탄두 최대 100여 개 추정
2018년 이후 북-미 비핵화 협상이 공전을 거듭하는 동안 북한은 핵무력 증강 시간을 벌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미 정보 당국은 올해 북한의 핵탄두 보유량이 최대 100여 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올해 1월 현재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가 30∼40개로 추정되며 이는 지난해보다 약 10개 증가한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군은 2018년 국방백서에서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량은 핵무기 10개를 제조할 수 있는 50여 kg, 고농축우라늄(HEU)은 ‘상당량’ 보유한 것으로 평가한 바 있다.
미 전략자산이 발진하는 괌이나 주일 미군기지 등을 타격권에 둔 미사일 전력을 완성했거나 그 수준에 도달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자위적 핵 억제력’을 강조하면서 특히 북극성-3형 등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전력화 및 양산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이 도발을 재개한다면 SLBM 시험발사를 대미 ‘자위적 핵 억제력’의 최우선 완성 이벤트로 삼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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