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국판 스페이스X’ 시대 열리나…우주 강국으로 첫발

  • 뉴시스
  • 입력 2020년 7월 29일 05시 15분


우주산업 진출 기반 마련…민간도 자유롭게 고체연료 사용 가능
경제 전반 파급 효과 상당…자체 위성 등 안보 역량 강화로 연결
자체 개발한 발사체로 인공위성 발사 가능…"가상 아닌 현실로"
文대통령 직접 지시한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9개월 협상 결실

우주발사체 고체 연료 탑재가 가능해지면서 ‘한국판 스페이스X(SpaceX)’ 시대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020년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으로 민간·상업용 로켓을 포함해 우주탐사를 위한 발사체 및 인공위성 개발 등이 한층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은 28일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이제 우리도 다른 우주개발 선진국들처럼 정부와 민간이 함께 액체연료형, 고체연료형, 하이브리드형 모두를 자유롭게 개발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그동안 한국형 우주발사체는 고체연료가 아닌 액체 엔진으로만 개발이 진행됐다. 군사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 미국 정부에서 제한해 왔기 때문이다. 액체 엔진의 경우 로켓의 무게와 크기를 증가시키고 고체연료보다 가격이 높다는 점 등이 단점으로 꾸준히 지적돼 왔다.

9개월 간 협상 끝에 고체 연료 탑재가 가능해지면서 우주 산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단 액체 연료로 한정됐던 과거와 달리, 민간 차원에서도 자유롭게 고체 연료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자체 개발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무제한으로 넓어졌다.

이는 곧 국내 우주 산업 규모 확장으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경제 전반에 미칠 파급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주발사체 산업의 근간이 되는 인공위성 수백대를 저궤도는 물론 중궤도에 쏘아 올린다면 우주로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딜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란 관측이다.

지난 7월 군 첫 통신위성 ‘아나시스 2호’가 미국 민간 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X의 발사체에 의존해 발사됐다면 앞으로는 자체 개발한 한국산 발사체로 쏘아 올릴 수 있게 된다. 한국형 기술이 새로운 우주 산업 생태계를 만들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김 차장은 “한국판 스페이스X가 가상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군 정찰위성 등도 자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안보 역량 강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 차장은 “이번 미사일 지침 개정은 우리 민간 기업들과 개인들, 특히 우주산업에 뛰어들기를 열망하는 젊은 인재들을 우주로 이끄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우주 인프라 건설의 제도적 토대가 마련됨으로써 한국판 뉴딜 정책이 우주로까지 확장되는 길이 열렸다”고 강조했다.

◇직접 24시간 한반도 정찰 가능…“언블링킹 아이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이번 개정으로 가장 주목해볼 수 있는 점은 우리 군의 정보·감시·정찰(ISR) 능력 향상이다. 군용 정찰 위성 단 한 대조차 보유하고 있지 않은 우리는 그동안 50조원에 가까운 국방 예산을 투입하고 있음에도 ISR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물론 다목적 실용위성인 아리랑 3호, 아리랑 3A호, 아리랑 5호 등을 보유하고 있지만 판독 기능으로서는 충분치 않았고 군사적 효용성도 부족했다.

김 차장은 “연구·개발을 가속화해 나간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우리가 자체 개발한 고체연료 우주발사체를 활용한 저궤도 군사 정찰 위성을 언제 어디서든지 우리 필요에 따라 우리 손으로 쏘아 올릴 수 있는 이런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라며 “한반도 상공을 24시간 감시하는 일명 ‘언블링킹(unblinking) 아이(깜빡이지 않는 눈)’를 구축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2020년대 중후반까지 우리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고체연료 발사체를 이용해 저궤도 군사 정찰 위성을 다수 발사하게 되면 우리 ISR은 비약적으로 향상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탄도미사일 사거리 800km 제한은 유지할 것”

한미 미사일 지침은 ▲군사용 탄도미사일 ▲군사용 순항미사일 ▲우주발사체 분야로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군사용 탄도미사일의 경우, 한미는 1979년 미사일 사거리 180㎞, 탄두중량 500㎏을 골자로 하는 미사일 지침에 합의했다. 2001년 1차 개정으로 사거리를 300㎞로 늘렸으며 2012년 2차 개정을 거치면서 사거리가 800㎞로 늘어났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인 2017년 3차 개정을 통해 사거리 800km를 유지하는 한편, 최대 탄두 중량은 2t으로 올라가면서 사실상 탄두 중량은 무제한으로 확대됐다. ‘사거리 800km, 탄두 중량 2t’인 새 탄도미사일 ‘현무-4’ 시험 개발 성공도 탄두 중량 무제한 지침 개정에 따른 것이다.

군사용 순항미사일의 경우 사거리 300km 이하면 탄두 중량은 무제한이며, 대신 탄두가 500kg 미만이면 사거리가 무제한으로 적용된다.

우주발사체 분야에 있어서는 그동안 고체 연료 사용이 제한돼 로켓 엔진이 낼 수 있는 총 에너지 양이 한정돼 있었다. 우주로 날아오르기 위해선, ‘5000~6000만 파운드?초(추력×작동시간, 역적)’가 필요한데, 지금까지는 ‘100만 파운드·초’ 이하로 제한되면서 사실상 필요한 총 에너지 양의 60분의 1 수준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한정했다.

다만 2001년도 개정 이후 민간 로켓의 경우 사거리 및 탑재 중량 제한은 삭제됐다고 김 차장은 뉴시스에 전했다.

청와대는 이번 고체 연료 탑재 지침 개정과 무관하게 기존 탄도미사일 사거리 800km 제한은 유지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김 차장은 “800km 사거리는 유지가 된다”며 “이번에 고체연료 사용 제한 문제를 먼저 해결하기로 한 것은 우주발사체 개발, 우주산업 발전,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인공위성이라는 필요를 감안했을 때 이것이 더 급하고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던 미사일지침 개정…9개월 협상의 결실

이번 지침 개정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도 강하게 반영됐다. 김 차장은 “이번 미사일 지침 개정은 이러한 문 대통령의 철학과도 일치한다”고 전했다.

김 차장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백악관 NSC(국가안전보장회의)가 ‘탑다운’ 방식으로 직접 협상해 고체 연료 탑재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당초 미국 국무부와 우리 외교부가 협상하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진전이 없자 김 차장이 직접 맡게 됐고, 9개월 동안 미국 측과 집중적인 협의를 가진 끝에 이번 성과를 일궈냈다.

김 차장은 “미국 NSC 상대방과 지난해 7월과 10월과 11월에 협상했고, 6차례 전화 통화를 했으며,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와도 만나 지속적으로 협상했다”고 전했다.

◇고체 연료 탑재 가능으로 ICBM까지?…美, 반중 전선 확대 전략 관측도

고체 연료 사용 제한이 해제되면서 사실상 미국이 우리나라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개발을 허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고체 연료는 보통 군사용 미사일에 주로 활용되고 있어 인공위성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고체 연료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이번 발표로 한미 미사일 지침 3차 개정 당시 한미 간에 합의된 사거리 800㎞ 제한이 의미가 없어졌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김 차장은 “800㎞ 사거리 제한을 푸는 문제는 결국 ‘in due time’(늦지 않게, 제 때)에 해결될 것”이라며 추가 협상의 여지를 남겨뒀다.

나아가 미국이 중국에 대한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 차장은 이번 지침과 관련해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은 67년 된 한미동맹을 한단계업그레이드 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 차장은 고체연료 사용제한 해제 등 협상 과정에서 미국 측이 반대급부로 요구한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반대급부 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일축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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