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승인’ 조항 빠졌지만… 檢 수사대상 제한해 상위법과 충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31일 03시 00분


[3대 권력기관 개편]
당정청, 검경수사권 시행령 개정키로

3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권력기관 개혁 관련 당정청 협의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당정청은 국가정보원의 명칭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고 직무 범위에서 국내 정보 수집 및 대공수사권을 삭제하기로 했다. 앞줄 왼쪽부터 박지원 국정원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3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권력기관 개혁 관련 당정청 협의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당정청은 국가정보원의 명칭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고 직무 범위에서 국내 정보 수집 및 대공수사권을 삭제하기로 했다. 앞줄 왼쪽부터 박지원 국정원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당정청이 30일 검사의 직접 수사 대상을 제한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검경 수사권 조정(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 관련 시행령 개정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검찰 개혁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가 법정 출범일(15일)을 넘긴 상황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부터 속도감 있게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행령 중 일부 내용을 놓고 법조계 일각에선 “지나친 검찰 힘 빼기”라는 지적이 나오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당정청은 이날 협의에서 검사의 수사 개시 범위를 △부패범죄에서 4급 이상 공무원, 뇌물 액수 3000만 원 이상 △경제범죄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 기준 피해액 5억 원 이상 등으로 한정하겠다고 했다. 부패범죄에서 5급 이하 공직자 범죄, 3000만 원 미만 뇌물죄 등은 경찰이 수사하라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이럴 경우에는 5급 이하 공무원에 대해선 검찰이 수사할 수 없어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지방의 시군청에서는 국장이 4급일 정도로 고위직이다. 사실상 주무인 5급 이하 공무원들의 토착 비리가 있더라도 검찰이 수사를 못 하면 비리를 밝혀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지방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공직자가 하급자를 시켜 특정 회사나 개인에게 특혜를 줬다는 공직 비리 사건을 수사할 때 4급 이상 고위직부터 수사선상에 올리는 일은 거의 없다”며 “행정관이나 사무관부터 먼저 수사하는데 시행령대로라면 이런 수사는 시도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공직자가 3000만 원 이상을 수수한 뇌물수수 사건, 5억 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특경가법 관련 경제사건에 대해서만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게 한 시행령 내용을 두고도 우려가 없지 않다. 가령 공직자가 3000만 원을 수수했다는 고소·고발을 접수해 검찰이 수사를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이하 액수를 수수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시행령과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행령이 상위법인 검찰청법 등을 위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여전히 나온다. 검찰청법에는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를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등 6가지 범죄로 제한했지만 범죄 유형을 제한했을 뿐 공무원 등 수사 대상에 대해 규정하지 않았다.

또 형사소송법 시행령 잠정안에 포함된 ‘피해자, 참고인 등의 소재가 불분명한 사건은 수사 중지로 포함돼 사건 관계인이 검찰에 이의신청할 수 없다’는 조항도 쟁점이다. 기소, 무혐의 등이 아닌 수사 중지 처분에 대해서 검찰이 개입할 수 없는 만큼 경찰이 사건을 뭉갤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시행령 내용이 알려진 뒤 가장 논란이 됐던 ‘국가·사회적으로 중대하거나 국민 다수의 피해가 발생하는 사건을 수사 개시할 경우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은 검경과 야당은 물론이고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마저 반발하면서 시행령에서 최종적으로 제외됐다. 조남관 법무부 검찰국장은 이날 당정청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논의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검찰청법 8조, 장관의 정치적 중립 침해 소지가 있어서 제외하기로 내부적으로 합의된 상태”라고 말했다.

당초 당정청은 이날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시행령을 공개할 예정이었지만 형사소송법 소관이 어딘지와 시행령 세부 사항을 놓고 다투면서 최종안 발표는 연기됐다. 검찰 관계자는 특별한 입장 표명 없이 “검찰은 시행령 안이 확정될 때까지 형사사법 절차에서 인권 보호, 범죄 대응 역량이 약화되지 않는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겠다”고만 했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박효목·고도예 기자
#검경수사권조정#검찰청법#형사소송법#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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