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되든 강제징용 입장 변화 가능성 크지 않아"
"한일 관계 개선 여지 있지만 기조 변화 어려울 듯"
차기 총리 이시바 시게루 주목…자민당 내 온건파
"대화 모멘텀 만들 기회…충돌 완화, 해법 찾을 수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돌연 사임 의사를 밝힘에 따라 향후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총리가 교체되더라도 한일 갈등의 기저에 있는 강제징용 해법을 놓고 일본 정부의 입장이 바뀔 가능성이 없는 만큼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역사 수정주의 행보를 강화하며 한일 관계의 걸림돌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아베 총리가 물러나고 정부가 새 총리와 마주앉으면서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아베 총리는 28일 총리 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 재발이 8월 상순 확인됐다며 총리직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차기 총리가 정해질 때까지 총리 임무를 수행키로 했다.
아베 총리는 그간 위안부 문제를 인정한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역사와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사죄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다. 아울러 독도와 군함도 등 역사 왜곡을 이어가며 한일 갈등을 부추긴 것은 물론 지난해에는 강제징용 판결을 이유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정책을 강행하는 등 한일 관계 악화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그간 아베 총리가 한일 관계에 미치는 악영향이 있었다”며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 한국에 대한 불신, 납치자 문제 쟁점화를 통한 북한 때리기 등으로 한일 간 역사 화해와 한반도의 탈냉전 체제에 대해서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개인의 정치적 리더십이 미치는 부정적 유산이 향후 새로운 총리가 나오면 불식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양 교수는 “한일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북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한 한일 간 입장차가 크고,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 민관 할 것 없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여기고 있어 일본 정부의 입장이 바뀔 가능성이 없다. 한일 양국 간 기본적 입장차로 양국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과잉 기대는 금물”이라고 밝혔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 역시 “아베 총리는 리더로서 역사 수정주의, 경제 보복,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총리가 교체되면 상대적으로 한일 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 있다”면서도 “총리가 교체되더라도 일본의 기조 변화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 2018년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이후 한일 관계는 수출 규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등을 놓고 최악의 경색 국면에 빠져 있다.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 보상 문제는 해결됐다는 입장인 반면 정부는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면서 피해자 권리 실현, 한일 양국 관계 등을 고려해 합리적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일 정상이 지난해 중국 청두에서 개최된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 계기에 만나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공감했지만 진전은 없는 상태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일본에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강조했으나 일본은 여전히 한국의 입장 변화를 요구하면서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한일 관계가 교착 상태에 있는 것은 강제동원 문제 때문”이라며 “‘한일 양국 정상들이 협의해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만큼 새 총리가 되면 새로운 분위기에서 해볼 가능성은 있지만 ’포스트 아베‘ 총리가 누가 되든지 간에 운신의 폭이 크지는 않다”고 짚었다.
그는 “새로운 기회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일 관계가 좋아진다고 보긴 어렵다”며 “양국 정부가 변화의 계기를 얼마나 잘 잡아서 선순환 구조로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 정부가 새로운 분위기를 활용해 강제동원 문제, 현금화 문제를 해결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언론에 따르면 후임 총리로 고노 다로(河野太郞) 방위상,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아베 총리의 최대 라이벌로 꼽히는 이시바 전 간사장에 주목하고 있다. 이시바 역시 우파이지만 주변국과 관계에서는 아베 총리보다 온건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이시바 전 간사장은 한일 과거사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내는 등 아베 총리처럼 역사 수정주의적 언동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반면 스가 관방장관과 고노 방위상은 아베 총리의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한일 관계에 대한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해석도 나온다.
양기호 교수는 “11월 말 한·중·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새 총리가 나서면 양국 관계에서 대화와 소통의 모멘텀을 찾을 수 있는 기회는 만들 수 있다”며 “계기를 잘 활용하면 내년 이맘때 쯤 발생할 수 있는 강제징용 전범기업의 현금화와 관련해 한일 충돌을 완화시키거나 극적으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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