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산 여전, 경제·방역 위해 의료계 협조 절실
대선·총선 공약 후퇴…이낙연 "전남 의대 수립" 공언
이수진 "국민 생명 인질로 협박할 때 정치 할 일 뭔가"
우원식 "이런 사람들에게 후퇴, 민주주의 유지될까"
정의당 "의사들 이기적 집단 행동에 국가 의제 물려"
정부·여당이 4일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에서 한 발 물러서면서 의사 집단과의 극한 대치가 수습 국면에 들어갔다.
공공의료 관련 정책 논의를 원점 재논의하기로 한 데 대해 민주당 내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차 대유행 우려기 높아지는 가운데 불가피했다는 판단이나, 사실상 의료계에 굴복한 게 아니냐는 당 안팎의 반발이 나오며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과 대한의사협회(의협)은 이날 오전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5개항 합의문으로 이뤄진 정책협약 서명식을 가졌다. 합의문은 코로나19가 안정될 때까지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 논의를 중단하고, 협의체를 구성해 원점에서 재논의하는 것이 골자다. 논의가 진행되는 중에는 입법 추진을 강행하지 않기로 했다.
합의에 따라 의협도 지난달 21일부터 돌입했던 집단휴진을 보름여 만에 철회하고 의료현장에 복귀하게 됐다. 민주당과 의협은 지난 1일 한정애 의장이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을 잇따라 만난 이래 마라톤 협상을 벌여왔다.
민주당은 또한 업무개시 명령을 거부해 고발된 전공의·전임의 문제도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전향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며 의료계에 유화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낙연 대표는 서명식에서 “전공의 고발 문제도 최선의 방법으로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같은 입장 변화는 지난 7월 당정협의에서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을 발표한 지 44일 만이다. 정부·여당이 사실상 회군한 배경은 경제와 방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선 의사 집단과 대치를 마냥 이어갈 수는 없다는 현실적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방역 태세 정비를 위해 의료계에 손을 내미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하나, 자칫 역점을 두고 추진한 국정과제인 공공의료 정책이 전면 후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당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서명식에서 “비록 정책 철회가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철회 후 원점 재논의’와 ‘중단 후 원점 재논의’는 사실상 같은 의미로 생각해서 비교적 잘 만든 합의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공공의료 관련 정책이 철회된 것과 다름없다는 의미로, 사실상 승리 선언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의사 인력 확충과 공공의료 강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민주당의 총선 공약이었다는 점이다. 지난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는 ‘의료취약지역 및 공공의료기관 인력 확보 대책 마련’을 제시했고,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의대정원 확대를 통한 필수 공공 지역 의료인력 확보’ 및 ‘의대 정원 확대’를 공약으로 세웠다.
특히 정부여당의 절대적 지지기반인 호남은 대표적 의료 취약지역으로, 전남의 경우 목포를 중심으로한 서남권과 순천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이 공공의대 유치에 사활을 걸어왔다. 서남대가 폐교된 전북도 공공의대가 역점 사업이다.
이낙연 대표 역시 당대표 경선 중인 지난달 7일 전남을 찾아 “전남은 지역이 광활하고 의료 취약지역이 많아 100명 이상의 의대 정원을 배정하고, 동·서부권 모두에 대학병원과 강의캠퍼스를 각각 설립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코로나19가 안정 국면으로 접어든 뒤 대화를 이어간다고 해도 ‘전면 백지화’를 내건 의료계와 더는 후퇴가 여의치 않은 정부여당간 대치에 다시 불이 붙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노총 출신 이수진 민주당 의원(비례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결국 이번 합의안은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지역의사제 도입을 의사들의 진료 복귀와 맞바꾼 것일 뿐”이라며 “원점 재논의, 힘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힘을 무기로 국민을 협박할 때, 그것도, 한번 잃으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국민의 생명을 인질삼아 불법 집단 행동을 할 때, 과연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느 ‘원점’에 서 있어야 하는가”라고 일갈했다.
을지로위원장인 우원식 의원은 전날 밤 페이스북에 “이런 사람들에게 후퇴하면 민주주의가 유지될수 있을까”라며 “이번에 시작해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두려움 없는 집단행동을 막지 못하면, 이런 류의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하는 집단행위들이 계속 될 거 아닌가”라고 강력 대응을 주문했다.
그는 나아가 “(민주화운동 시절) 그때는 정치권력이 두려웠지만, 지금은 의료권력이 두렵다”면서 의료계를 ‘권력’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정의당도 김종철 선임대변인 명의 논평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관련된 중차대한 국가적인 의제를 의사들의 이기적인 집단행동에 맞닥뜨리자 물려버리고 만 것”이라며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 할 수 밖에 없다”고 개탄했다.
한 호남 의원은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당과 정부는 의료인력과 지역의사가 부족해 감염병 대응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이번에(코로나 사태로) 나왔으니 의협을 설득하고 국민의 양해를 구해가려는 것”이라며 “(합의 취지는) 그간 서로 소통이 부족했으니 소통해보자는 것”이라고 공공의대 신설 백지화 가능성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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