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유도, 조롱도 없었다. ‘우분투(ubuntu·당신이 있어야 내가 있다)’와 협치, 윈윈윈(win-win-win)을 말하자 야당 의석에서조차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야당의 전례없는 호평을 가져 온 7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풍경이다.
이날 이 대표의 연설은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회복이 불가능해 보였던 여야 관계에 훈풍을 일으켰다. 이 대표는 아프리카 반투족의 언어인 ‘우분투’ 정신을 언급하며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한 연대와 협력에 방점을 찍었다. 특히 “전례 없는 국난에도 정치가 변하지 않는다면,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이제 달라지자”며 “국민과 여야에 함게 이익되는 윈윈윈의 정치를 시작하자. 저부터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여야정 정례회의 복원과 감염병 전문병원 확충, 벤처기업 지원, 여성 안전 등 21대 총선 당시 여야 공통 정책 공동 입법 등을 제시했다. 경제민주화 실현, 청년 정치참여 확대 등 공통 정각정책 입법화도 제안했다. 이 대표는 “저는 ‘원칙 있는 협치’를 약속드린 바 있다”며 “만약 ‘반대를 위한 반대’가 있다면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 한 대화로 풀지 못할 문제는 없다고 저는 믿는다”고 강조했다.
38분에 걸친 이 대표의 연설이 끝나자 야당에서는 이례적인 호평이 이어졌다. 국민의힘의 배준영 대변인은 “이 대표가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우분투’를 말했다. 야당이 있어야 여당이 있고, 국회가 있어야 정부가 바로 선다는 취지로 이해한다”며 “대환영이며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같은 당 최형두 원내대변인은 “새로운 집권여당 대표다운 중후하고 울림 있는 연설”이라고 했다. 2018년 9월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연설을 “민생은 외면하고 희망은 빠진 그저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밀어붙이기일 뿐”이라 비판한 것과 대조적이다.
안혜진 국민의당 대변인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리더다운 모습을 보였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소통 부재를 답습하지 말고,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집권 여당의 리더로서 야당과의 협치를 통해 국민 대통합의 밑거름을 탄탄히 쌓아가길 희망한다”고 했다. 또 “국민의당은 오늘을 기점으로 오만함을 벗어던진 여당의 큰 양보와 협치를 기대한다”고 했다.
여기에 민주당은 오후 최인호 수석대변인 명의의 추가 논평을 통해 “감사드린다. 국민의힘과 함께 희망을 만드는 정치를 위해 오늘의 약속을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이례적으로 화답했다. 한 국회 관계자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놓고 여야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진 것은 예상 밖”이라며, 사실상 여야 협치의 물꼬가 트였다고 평가했다.
이는 불과 한 달 전 양극단으로 치달았던 여야 관계를 감안하면 예상치 못했던 진전이다. 지난달 초 막을 내린 7월 임시국회 당시 176석의 의석을 내세워 ‘부동산 입법 속도전’을 펼친 여당과 속절없이 당한 야당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져 있었다. 5선 의원이자 ‘2년 7개월’로 민주화 이후 최장수 국무총리를 지낸 이 대표의 연륜과 균형감각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 연설문은 이 대표의 주도하에 ‘공감’을 키워드로, 연설 1시간 전인 오전 9시까지 셀 수 없는 수정 작업을 거치며 완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기자 출신인 이 대표는 취임 후 메시지실장직을 신설할 정도로 말과 글에 민감한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이날 “이 대표가 사실상 작성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다만 정치평론가들은 정기국회에서 여야 간 협치가 현실화돼야 이날 연설이 의미가 있다고 봤다. 특히 21대 국회 들어 여당이 상임위원장 전석을 차지했던 ‘원구성’을 쟁점으로 주목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대표에 대한 (야당의) 기대치가 높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발언이 지켜지기를 희망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것”이라며 “야당에서 바라는 협치는 상임위 재분배 딱 하나”라고 했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협치를 하자면서 여당이 상임위원회를 모두 석권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효과가 지속되긴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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