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 말했던 김종인 "여건 조성 필요" 새 조건
"원구성 관행 안 지켜 여야 균열"…법사위 양보 요구
이낙연 "개원 협상 우여곡절 되풀이 현명한가" 난색
김종인 "그 현안 이어지면 여야 긴장 유지될 수밖에"
靑 "원내 문제를 대통령 대화와 연계…상황 지켜봐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0일 협치를 강조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언급하며 ‘사전 여건 조성’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여당과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기싸움’ 차원으로 해석된다.
나아가 김 위원장이 현재 여야 갈등의 궁극적인 원인을 21대 국회 원구성 협상 과정에 있다는 문제 인식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상임위 재분배 재협상을 전제로 한 협치만을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이 대표와의 오찬 회동 모두 발언에서 전날 문 대통령 주재의 민주당 주요 지도부 초청 간담회 화두였던 협치를 거론하며 “협치를 강조하려면 힘을 가지신 분들이 협치할 수 있는 여건을 사전에 만들어주셔야 되지 않느냐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협치하려면 협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하는데 총선이 끝나고 원 구성 과정 속에서 종전에 지켜오던 관행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여야 사이에 균열이 생겨났고, 그것이 아직도 봉합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21대 국회 원 구성 협상 과정에서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차지한 것에서 시작한 여야 갈등이 봉합되지 않고 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청와대와 여당이 말하는 협치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특히 김 위원장이 언급한 ‘관행’은 1987년 이후 야당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맡아온 국회의 관행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는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넘겨달라는 뜻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6월 원 구성 협상 때 여당은 법사위원장 자리를 반드시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야당은 법사위를 제외한 다른 상임위는 무의미하다는 입장으로 평행선을 달린 끝에 결국 민주당이 모든 상임위원장을 차지했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 6월15일 당시 미래통합당 의원총회에서 “국토위, 정무위와 같은 상임위를 받는다고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며 “통합당은 법사위를 지켜야 한다”고 강력 주창했고 통합당은 결국 민주당의 7개 상임위 배분안을 거절했다.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과의 단독 회담을 제안한 이 대표 앞에서 상임위 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대통령과의 단독 회담 수용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앞서 자신이 내세웠던 ‘단독 영수회담’이라는 조건 앞에 또 하나의 조건을 내세운 것으로, 협상의 문턱만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에 앞서 먼저 마이크를 잡은 이 대표는 “어제 문재인 대통령을 뵀었는데 문 대통령도 협치를 많이 강조해줬다”며 “대통령께 여야 대표들을 한번 불러주셨으면 고맙겠단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원하면 (문 대통령과) 두 분이 만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식으로 자주 대화해서 어려운 문제도 대화로 풀어가는 새로운 정치를 보여드리는 게 국난의 시기에 국민들께 최소한의 도리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이 대표의 이러한 발언은 문 대통령의 여야 정당 대표 초청 대화 제안 때 김 위원장이 거부하며 내세웠던 ‘단독 영수회담’ 조건을 사실상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이었지만, 김 위원장 면전에서 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문 대통령과의 대화 성사를 위해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단독 회담’이라는 형식 조건을 양보한 셈이지만, 정작 김 위원장은 민주당 차원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법사위원장 자리를 새로운 협상 조건으로 내거는 방식으로 거절 의사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이 대표는 “개원 협상을 했던 그 당시에 2~3달이 걸렸던 우여곡절을 9월 국회에서 되풀이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이 회동 후 기자들을 만나 전했다.
김 위원장은 “그 현안이 풀리지 않고 이어진다면 여야의 긴장 관계가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말로 이 대표의 반응에 답변을 갈음했다고 김 대변인은 전했다.
종합하면 이 대표는 오랜 기간 진통을 겪었던 상임위 배분 과정을 다시 밟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고, 이에 김 위원장은 여야 간 긴장 관계 불가피성을 거론하는 것으로 맞서는 등 두 대표 간 극명한 인식 차만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과의 대화에 있어 아쉬울 게 전혀 없는 김 위원장의 입장을 고려했을 때 이후에도 여야 양측은 당분간 회담 성사 조건을 둘러싼 장외 공방전을 계속 벌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원내 문제 해결을 단독 회담의 선결 조건으로 연계한 것 같다”면서 “하지만 구조적으로 국회에서 해결할 부분이지, 청와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된다. 당분간은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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