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면 끝이다! 요즘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의 기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수호에 나선 것도 이런 기류의 반영이다. 추 장관까지 사퇴하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이어 연타석 삼진아웃이다. 일단, 굴욕적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몰아내기에 그토록 공을 들였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반면 법무부 장관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진다면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권위에 심각한 내상이 올 수밖에 없다.
배수지진(背水之陣)
안 그래도 장관 인사와 관련해 논란이 많은 상황이다.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명한 장관만 24명에 달한다. 박근혜 정부 10건, 이명박 정부 17건을 훌쩍 넘어선 수치다. 그렇게 무리해가며 임명한 장관마저 개인적 비리 의혹으로 줄사퇴하고 만다면 무엇보다 공직사회의 동요를 막기 어렵다. 이른바 영(令)이 서지 않는다. 집권 후반기에 접어든 지금 안 그래도 레임덕 조짐이 나타나는 상황이다.
더욱이 문 대통령은 추 장관에게 특명까지 부여했다. 필생의 과업으로 생각하는 ‘검찰개혁’이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법무부 장관은 문 대통령에게는 장관 이상의 장관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시절 검찰개혁에 필요한 주요 입법은 처리했다. 조직 개편을 비롯한 제도적 개혁도 상당 부분 완료했다. 추 장관에게 넘겨진 과제 가운데 검찰 내 적폐세력 정리도 몇 차례 인사로 마무리한 상태다.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후속법 처리와 공수처 발족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지만, 이것은 추 장관이 할 일은 아니다. 남은 것은 ‘알고 보니’ 적폐세력이었다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리뿐이다. 윤 총장은 추 장관과 여당의 거듭된 압박에도 버티는 중이다. 그런데 추 장관만 물러난다? 이것은 결국 싸움에서 졌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추 장관 사임 후 윤 총장의 힘이 되살아나면 검찰이 정권 비리 수사에 다시 박차를 가할지 모른다. 혹시 검찰개혁에 버무려 은폐하려 했던 정권 비리의 실상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한다면 정권교체 이후 안전을 보장받기 어려울지 모른다. 최근 여당 국민의힘의 추미애 때리기는 범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른 윤 총장 지키기 차원에서 이뤄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윤 총장 사퇴 전 추 장관을 물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순망치한(脣亡齒寒)
밀리면 끝이다! 추 장관의 속마음이기도 하다. 추 장관이 급에 맞지 않는 법무부 장관직을 수용한 데는 그 나름의 노림수가 있다. 문 대통령의 사람으로 변신해 민주당 내 주류인 친문(친문재인)계 지지세를 확보한 다음,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이다. 서울시장 자리도 갑자기 비었다. 내년 재보궐선거(재보선) 때 서울시장에 출마해 경력을 쌓은 다음 대선에 도전하는 것도 노려볼 만하다. 그런데 법무부 장관 자리에서 불명예 제대를 당하고 나면 더는 기회가 없다. 추 장관이 끝까지 버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배수지진(背水之陣)은 희생을 전제로 한 전략이다. 누군가는 선봉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 나머지가 산다. 추 장관은 현재 그런 위치에 놓여 있다. 돌이켜보면 문 대통령이 추 장관을 선택했을 때부터 이런 역할을 가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나 친문계에게 추 장관은 조국 전 장관하고는 의미가 다른 존재다. 운명을 함께해왔고 또 함께할 동지가 아니다. 그래서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카드이기도 하다. 맷집이 좋은 윤 총장을 찍어내고 나면 교체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전투는 길어졌고, 최전선에 나선 ‘추다르크’는 의외의 부상을 입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전사할 때까지 선봉에 서서 싸우게 할 것인가, 아니면 뒤로 물려 후일을 도모할 기회를 줄 것인가. 이것은 결국 부상 수준에 따라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어차피 살릴 수 없다면 명예로운 전사가 차라리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추 장관 아들의 휴가 특혜 의혹은 휘발성이 큰 주제다. 부상치고는 중상(重傷)에 해당한다. 그런데 본인은 경상(輕傷)이라 여기고 싶을 테다. 그래야 회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선봉장이 부상을 입음에 따라 생기는 전력 공백이다. 실제로 추 장관 관련 의혹은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 그리고 여당 내에서는 추 장관이 자진 사퇴 결단을 내려줬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을 테다. 하지만 추 장관으로서는 앞에 언급한 이유 등으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진퇴유곡(進退維谷)에 빠진 것이다.
알아서 그만뒀으면 좋겠는데, 추 장관 성격상 절대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면 대안은 하나뿐이다. 끝까지 비호하면서 역공을 취하는 길이다. 최근 민주당 친문계 의원들이 막말성 발언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추 장관 수호에 나선 이유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9월 8일 한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언급했다. “우리가 식당 가서 김치찌개 시킨 것 빨리 좀 주세요, 그럼 이게 청탁이냐.” 정 의원은 9월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런 역공까지 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정치군인, 정치검찰, 박근혜 전 대통령 추종 정당과 태극기부대가 만들어낸 정치공작 합작품이다. (중략) 탄핵정국 때 군사 쿠데타를 예고했던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가 오버랩된다.”
마치 이 발언의 속편이라도 쓰듯이 민주당 홍영표 의원도 9월 16일 서욱 당시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런 발언을 내놓았다. “과거 군을 사유화하고 군에서 정치에 개입하고 그랬던 세력들이 옛날에는 민간인을 사찰하고 공작하고 쿠데타까지 일으켰다. 이제 그런 것들이 안 되니까 그 세력들이 국회에 와서 공작을 한다.” 급기야 박성준 원내대변인은 9월 16일 공식 논평에서 이런 발언까지 내놓았다. “추 장관의 아들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을 몸소 실천했다.”
모두 며칠 사이 기관총 소사하듯 쏟아져 나온 말들이다. 그런데 이들 발언의 어감이 묘하다. 희생을 강요하는 응원, 그러니까 응원을 하는 듯 벼랑 끝으로 내모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차피 회생이 불가능하다면 덕담이나마 잔뜩 안겨 떠나게 해주자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아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고나 할까.
자중지란(自中之亂)
추 장관도 이런 저간의 흐름을 얼마간 파악하고 있을 테다. 그래서 지금쯤은 카드를 열심히 챙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회생용 카드다. 아들 휴가 특혜 의혹을 최소화하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에 더해 문 대통령과 친문계를 상대로 활용할 수 있는 카드를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검찰 요직에 ‘추미애 사단’을 포진시킴으로써 기본적인 준비는 마친 상태다. 이들을 동원한다면 송철호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 정권 비리 관련 수사 정보수집이 일단 가능할 것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문 대통령과 친문계, 그리고 추 장관의 관계는 결과적으로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가 되고 말았다. 추 장관이 그 나름의 카드를 확보한다면 더 그렇게 될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면 추 장관은 언제 그만둘까. 아들 관련 수사가 마무리된 후 의혹을 거의 벗은 시점이 될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수사 결과는 ‘답정너’여야 한다. 증거 부족에 따른 무혐의 불기소 처리다. 이 또한 ‘추미애 사단’ 덕분에 그렇게 어렵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수사 일정이 중요하다. 가능한 한 신속하게 수사를 종결해야 추 장관의 사퇴 시기도 앞당길 수 있다. 추 장관이 만약 내년 재보선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하려 한다면 그 시점은 공직선거법상 90일 이전인 내년 1월 중순 즈음이어야 한다.
내친김에 추 장관이 공천까지 장담받고자 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법무부 장관직 내려놓는다. 선봉에서 충분히 역할을 다했으니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보장해달라!’ 이런 식으로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내년 재보선에서 서울시장 선거 승리를 포기할 요량이 아니라면 친문계로서는 받기 어려울 카드다. 이길 확률이 높다면 무조건 친문계 또는 친문계와 가까운 누군가를 내보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반면 서울시장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면 역설적으로 추 장관 카드를 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차피 포기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경우 추 장관 스스로 서울시장 카드를 접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출마해 낙선하느니 곧바로 대선주자로 나가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추 장관은 문 대통령에게도, 친문계에게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봐야 한다. 우아한 토사구팽으로 정리하려 하겠지만, 추 장관은 쉽게 떨어져나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추 장관은 포스트 문재인 체제에서 본인이 중심이 되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이낙연 대표하고도 갈등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이 대표의 최근 발언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 9월 1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는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에게도 과제가 생겼다. 사실관계를 분명히 가리되 과잉대응은 자제하는 게 옳다.” 함구령까지는 아니지만, 발언 자제령을 내린 것이다. 이 또한 추 장관을 도와주려고 하는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를 애매한 발언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견제성 발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추 장관은 향후 민주당 내에서 조 전 장관하고는 다른 의미에서 ‘문제적 인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의외의 갈등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추 장관이 이번 아들 관련 논란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보고 있다면 더욱 그렇게 흘러갈 것으로 봐야 한다. 혹시 이번 일을 계기로 친문계를 포함한 진보 지지층 사이에서 조 전 장관 못지않은 영웅으로 부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야무진 꿈을 추 장관이 꾸고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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