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상부지시-시신훼손’ 판단 고수… ‘80m서 소통’ 北주장 반박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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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우리 국민 사살]합참 방문 野의원들에 브리핑
軍, 靑보고때 이미 ‘사살 지시’ 확인… 靑도 알았다면 늑장대응 논란 커져
‘시신 못찾아 부유물만 불태웠다’는 北통지문 주장 뒤엎을 단서 있는듯

우리 군이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모 씨(47)가 사살될 당시 북한군이 상부에 이 씨의 처리 방침을 묻고 상부가 사살 지시를 내리는 교신 내용을 감청해 실시간으로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군이 청와대에 피격 사실을 보고할 때 북한의 사살 관련 내부 대화까지 알고 있었다는 것으로, “보고 초기에는 조각조각 파편화된 첩보의 신빙성을 확인해야 해 시간이 걸렸다”는 청와대의 해명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이에 따라 청와대가 실시간으로 감청된 사살 정황을 확보하고도 신속히 대응하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보수 야당에선 청와대가 북한의 구체적인 사살 정황을 알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늑장 보고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군과 정치권에 대한 본보의 취재를 종합하면 22일 오후 9시경 북한군이 상부로 추정되는 누군가에게 이 씨 처리 방침을 문의했고 사살 지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오후 9시 40분경 사살 결과 보고가 북한군 상부에 전해진 것으로 군은 보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29일 라디오에서 “‘그러면 어떻게 처리할까요?’라고 보고하는 과정에 갑자기 ‘사격을 하라’고 해 단속정이 사격을 했다고 저는 (군으로부터)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합동참모본부는 28일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보안서약서를 받고 피살 당시 감청 내용이 담긴 특수정보(SI)를 설명했다고 한다. 이를 들은 한기호 의원은 “감청 내용은 비밀이라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면서도 “상급부대에서 죽이라고 지시해서 죽였다는데 다른 구체적인 상황이 뭐가 더 필요하겠느냐”고 말했다.

청와대는 23일 오전 1시에 열린 긴급 관계장관회의에서 조각조각 토막 난 첩보를 연결해 정확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시간이 걸렸고 이 때문에 문 대통령에 대한 대면보고도 23일 오전 8시 반에야 이뤄졌다고 설명해 왔다. 하지만 군에 정통한 소식통은 “우리 군이 북한군 교신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는 장비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사살”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등장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런 장비를 통해 실시간으로 포착된 은어나 암구호 등 관련 감청 내용을 군이 분석해 신속하게 사살 정황을 유추해내고 청와대에 보고할 수 있었다는 것.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실시간 감청을 한다고 해서 이야기가 매끄럽게 들리는 것이 아니다”라며 “다양한 단어가 혼재돼 들리는 상황이었고 그것을 맞춰서 하나의 정보로 만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군의 감청에서 “사살할까요”라는 말이 포착됐다는 보도가 29일 나오자 군과 청와대는 별 반응을 하지 않다가 첫 보도가 나온 2시간 뒤 국방부는 입장문을 내고 “당시 우리 군이 획득한 다양한 출처의 첩보 내용에서 ‘사살’을 언급한 내용은 전혀 없다”면서도 “다만 단편적인 첩보를 종합 분석하여 추후에 (사살) 관련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합참은 28일 국민의힘 브리핑을 통해 결과적으로 이 씨의 사망 경위가 담긴 25일 북한 통지문의 핵심 주장들을 반박하고 나섰다. 군이 정보자산 등을 통해 결론 내린 초기 판단 중 핵심 내용은 그대로 신뢰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 일각에선 청와대의 과도한 정보 통제에 더해 북한이 통지문을 보내온 이후 우리 군이 포착한 대북 정보의 재검토 방침까지 나오자 합참이 기존 판단을 고수하는 한편 추가 정황을 공개하면서 북한 주장을 맞받아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우선 합참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북한이 이 씨를 사살한 후 시신에 기름을 붓고 불태웠다는 초기 판단을 거듭 확인했다. 이 씨가 단속 명령에 불응하고 도주하는 상황이 조성돼 사살했지만 시신은 찾지 못했고, 부유물만 태웠다는 북한의 주장을 뒤엎을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을 확보했음을 내비쳤다는 것. 구명조끼를 착용한 시신은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도 의원들과 합참 관계자들은 견해를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북한에서 출동한 함정이 ‘동력선으로 엔진이 가동 중인 상태’였다는 정황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은 이를 토대로 (배의 엔진 소음에) 바다 소음까지 있는 상황에서 80m 떨어진 거리에서 기진맥진한 이 씨와 소통해 신원을 확인했다는 북측 주장이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파도가 치는 밤바다에서 불빛에만 의존해 40∼50m 떨어진, 흔들리는 부유물 위의 사람을 사살했다는 북한의 발표 내용은 믿을 수 없다고도 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박민우·박효목 기자
#북한#국민#사살#상부지시#시신훼손#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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