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이후 독일은 기계공업의 강국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굳히며 다양한 명품과 거대 회사들을 탄생시켰다. 독일인 특유의 근면성실함과 꼼꼼함은 기계류를 개발하고 제작하는데 대단한 강점으로 작용했고, 그 결과 각종 공산품 시장에서 ‘Made in Germany’는 우수한 성능과 신뢰성을 보장하는 믿음의 상징처럼 인식되어 왔었다.
이러한 인식은 총기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총기는 우수한 성능과 신뢰성으로 명성이 자자했고, 전후 개발된 총기들도 세계 정상급의 성능을 자랑하며 기계공업 강국 독일의 명성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대테러부대의 표준 개인화기
전후 최초의 신형 소총인 G3는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쓰이고 있는 명품이고, 반자동 저격용 소총인 PSG-1은 볼트액션 저격총에 근접하는 높은 명중정밀도를 가진 총기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기관단총인 MP5 시리즈는 기관단총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세계 대테러부대의 표준 개인화기로 기록적인 히트를 쳤다.
독일의 기계공업 기반이 워낙 탄탄하고 총기 개발과 제작에 있어서 독보적인 입지를 굳혀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독일군이 사용하는 총기는 당연히 ‘Made in Germany’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그런데 내년부터 보급되는 독일연방군의 차세대 제식소총은 ‘Made in Germany’가 아니라 ‘Made in Korea’, 그것도 전라북도 완주군의 시골 한적한 곳에 위치한 작은 공단의 중소기업에서 만들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일군은 1997년부터 배치되기 시작한 최신형 돌격소총 G36을 막 보급받기 시작하던 상황이었다. G36은 가볍고 튼튼한 신소재인 폴리머(Polymer)를 대거 사용해 무게를 줄이고 휴대성을 높였으며, 광학조준장비를 기본 탑재한 그야말로 미래형 소총의 전형이었다.
미래 지향적인 외관의 이 소총은 등장과 함께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왔고, MP5 기관단총 때부터 쌓아올린 H&K(Heckler & Koch)의 ‘총기 명가’ 이미지에 힘입어 독일연방군 제식 채용과 동시에 세계 각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세계 각국의 특수부대와 경찰특공대, 대통령 경호부대들이 앞을 다투어 채용했고, 덕분에 H&K는 경영난에서 벗어나며 사세 확장에까지 나서게 됐다. 그러나 G36의 흥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이 발발하고 이 총기의 실전 사용이 많아지면서 점차 그 문제점들이 노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선 부대에서는 G36 전용으로 개발된 탄창의 구조적 결함, 고정 장착된 광학 조준경의 불편한 구조, 개머리판 설계 오류 등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탄창은 M16 탄창보다 더 두껍고 결합부의 설계가 잘못돼 탄창 결합부로 수시로 모래나 이물질이 들어가 기능고장을 일으켰다. 고정 장착된 광학조준경은 접안구가 너무 작고 위치가 애매해 신속한 조준을 방해했고, 개머리판은 접었을 때 탄피 배출구를 막아 사격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시작에 불과했다.
폴리머 소재 소총의 치명적 단점
G36은 세계 최초로 폴리머 소재를 채용해 제작된 소총이다. 폴리머 소재는 가볍고 튼튼했지만, 연발 사격 또는 장기간 사격으로 인해 총열이 과열될 경우 열에 의해 변형이 생기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이 같은 문제는 테러와의 전쟁 기간 중 독일군의 총기 사용 시간이 늘어나면서 곳곳에서 제기되기 시작했고, 특수부대를 중심으로 여러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독일은 이 문제가 불러올 파장을 우려해 이 문제를 상당기간 은폐해 왔었다.
그러던 중 2010년, 독일 국방부 보고서가 의회에서 문제가 되면서 G36의 문제가 만천 하에 공식적으로 드러나게 됐다. 물론 열 변형에 의한 영점 틀어짐 현상은 한국군 보병처럼 평시 단발로만 사격 훈련을 하고, 실전과는 거리가 먼 훈련을 하는 군대에서는 전혀 우려할 것이 없는 문제다. 열 변형 문제는 30발 탄창 3~4개 이상을 연발로 사격하거나, 장시간 여러 탄창을 비울만큼 많은 사격 상황에서나 발생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전장 한복판에서 영점이 틀어진다는 것은 아무리 조준하고 사격해도 명중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때문에 H&K는 G36의 문제를 개선한 HK233 모델을 개발해 독일군에 제안했지만, 2017년 독일 국방부는 완전히 새로운 신형 소총을 채용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4가지 후보의 제안서를 받았다.
H&K는 독일군 특수부대에 G38이라는 명칭으로 일부 채용된 HK416A5 모델과 차세대 모듈식 소총으로 야심차게 개발한 HK433 모델을 제시했다. AUG로 유명한 슈타이어는 AR-15 소총에 기반을 둔 RS556 모델을 들고 나왔고, 헤넬(Heanel)은 CAR816의 면허생산형인 Mk.556 모델을 제시했다.
독일 국방부는 1년의 시험평가 끝에 최종 후보로 HK433 모델과 Mk.556을 최종 후보로 선정했지만 2018년 10월, 돌연 사업 중단을 선언했다. 표면적으로는 이들 두 모델이 작전요구성능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사실은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선에서 G36을 대체해 달라는 빗발치는 요구는 계속 이어졌고, 결국 2020년 사업을 재개해 9월 14일, Mk.556을 차세대 제식 소총으로 선정했다.
Mk.556 모델은 독일 총기개발사 헤넬이 UAE의 카라칼(Caracal)의 CAR816 모델을 면허생산한 모델이다. CAR816은 UAE가 무기체계 독자 개발을 위해 설립된 카라칼이 독일 H&K의 수석디자이너로 HK416을 설계했던 로버트 허트(Robert Hirt)와 크리스 시로이스(Chris Sirois) 연구원을 영입해 만든 HK416의 UAE판이다.
헤넬이 독자 모델이 아닌 CAR816의 면허생산 모델을 들고 나온 이유는 이 회사가 카라칼의 자회사이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1840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총기 회사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MP38과 MP40 기관단총, 세계 최초의 돌격소총인 StG-44를 개발한 업체지만, 전후 사세가 크게 줄어들어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였다가 카라칼 인터내셔널에 인수된 뒤 첫 도전장으로 독일연방군 차세대 제식 소총 수주전에 뛰어든 것이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제품 생산
문제는 이 회사의 직원이 200명이 채 되지 않고, 소총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 설비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회사는 모회사인 카라칼의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문제는 카라칼 역시 연구개발만 하는 업체여서 소총 생산 설비가 없다는 것이었다.
카라칼은 CAR816이라는 걸출한 소총을 개발했지만, 생산 설비가 없어 해외 업체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의뢰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는데, UAE군에 납품된 CAR816 소총 9만 정 역시 OEM 방식으로 해외에서 제작됐는데, 이 가운데 상당 수량을 한국의 다산기공이 맡아 납품했다.
세계 여러 나라에 OEM 협력사를 두고 있는 카라칼은 다산기공을 특히 신뢰하며 많은 일감을 주고 있다. 다산기공이 총포사업에 뛰어들기 전부터 자동차와 헬기 정밀 부품을 생산하며 기계 정밀 가공 분야에 상당한 기술력과 신뢰도를 가지고 있고, 실제로 다산이 납품한 물량 가운데 하자가 발생한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카라칼은 최근 인도육군 특수전 소총 사업에도 다산기공과 함께 팀을 이뤄 9만 4000정 사업을 따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번 독일군 차세대 소총 사업에서도 다산기공이 주목받고 있다. 이 사업은 2억 4500만 유로, 한화 약 3344억 원으로 12만 정의 소총을 도입하는데, 생산 설비가 없는 헤넬과 카라칼 대신 다산기공이 부품 또는 반제품 제작 형태로 생산 물량을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내년에 독일 의회에서 이번 사업 예산이 통과돼 정식 계약이 체결되고, 다산기공이 제작한 Mk.556이 독일군에 납품될 경우 다산기공은 향후 총기 수출 시장에서 확고하게 입지를 굳히게 될 전망이다. 총기 강국 독일군이 제식 채용해 사용하는 총기를 제작하는 메이커라는 브랜드 가치 상승효과는 물론, 최근 한국군 특수전용 기관단총 입찰에서도 승리한 실적이 입소문을 타며 국제 무기 시장에서 그 이름을 확실하게 알리게 됐기 때문이다.
한때 유럽을 주름 잡으며 총기 강국으로 위상을 날렸던 독일이 이제는 ‘Made in Germany’가 아닌 ‘Made in Korea’ 총기를 제식으로 채용하다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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