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신문 “왕이 이달말 訪日 전망”
방일 늦춰지면서 일정 조정된 듯
전문가 “폼페이오 방한 연기따라 中, 무리할 필요 느끼지 못한 듯”
일각 “미중갈등속 韓가치 하향 우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이달 초 방한이 무산된 데 이어 이달 중순으로 추진되던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사진)의 한국 방문도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왕 부장이 일본 방문을 늦추면서 방한 일정이 미뤄진 것으로 보이지만 폼페이오 장관 방한 연기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는 5일 왕 부장의 방한 일정에 대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외교 소식통도 “왕 부장이 (당초 예정대로) 다음 주에 한국을 찾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다른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한중 양국은 왕 부장이 12, 13일경 방한하는 방안을 협의해 오면서 일정 조율을 상당히 진척시킨 단계였다. 왕 부장은 이달 초중순 일본을 방문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신임 총리를 예방하는 방안을 일본 정부와 조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왕 부장이 이달 하순 일본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애초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쿼드(Quad)’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7, 8일 한국을 찾을 예정이었다. 쿼드는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참여하는 반중(反中) 전선의 성격이 강한 협의체다. 이 때문에 왕 부장이 폼페이오 장관의 한일 연쇄 방문을 견제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중국으로 끌어들이는 행보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미 국무부는 3일(현지 시간) 폼페이오 장관이 4∼6일 일본 방문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면서도 한국 방문은 연기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외교부는 사전에 미국 측이 방한 연기를 알려왔다고 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당혹해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대선 전 폼페이오 장관 방한을 계기로 종전선언 메시지를 내보려는 구상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일본을 방문해 중국 견제 회의는 참석하면서 한국을 건너뛰자 반중 전선 구축에 집중하고 있는 미국이 쿼드 등 중국 견제 참여에 미온적인 한국과 거리를 두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왕 부장마저 방한을 미루자 전문가들은 일본 방문 일정에 따라 언제든 방한 계획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현 시점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미중의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왕 부장으로서는 폼페이오 장관이 왔다면 한국에 설명했을 쿼드 구상 등 중국 견제 전략에 대해 한국과 논의해 볼 수 있었겠지만, 폼페이오 방한이 연기되자 당장 한국에 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은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택한 한국을 한미동맹의 약한 고리로 보고 있다”며 “왕 부장의 방문이 결과적으로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에 맞대응하는 성격도 있었던 만큼 중국 입장에서 무리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정부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연내 방한에 지나치게 매달릴수록 중국에 대한 외교 지렛대가 사라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의 가치가 (일본의) 종속변수로 하향 조정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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