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이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모 씨(47)가 실종된 당일 그가 북한 해역으로 떠밀려 갔을 가능성을 전혀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군의 허술한 초기 대응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군 당국은 실종자 수색이 이뤄지는 동안 북한에 공조를 요청할 통신 수단이 있다는 걸 알고도 활용하지 않아 이 씨를 구조할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책임론에 휩싸였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이 씨 실종 당일 ‘월북 가능성이 없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서 장관은 당시 북한군에 실종자 수색 협조를 요청했어야 했다는 지적에 “최초 월요일(지난달 21일)에 보고를 받고 ‘북측으로 갈 가능성이 있느냐’고 실무진에게 물었는데 ‘월북 가능성이 낮다, 없다’ 이렇게 보고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처음부터 월북자라고 생각한 건 아닌가’라고 묻자 서 장관은 “첫날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첩보를 통해서 북측에 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 씨는 지난달 21일 서해 소연평도 남쪽 2km 해상에서 실종됐다. 이 지점과 북방한계선(NLL)의 거리는 10여 km에 불과하다. 이 씨가 충분히 NLL 이북으로 떠밀려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단순 실종’으로 초기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결국 군은 지난달 22일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이 씨가 민간 선박에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정황을 포착한 뒤 만 하루 동안 유지하던 ‘단순 실종자’ 판단을 ‘월북 시도자’로 변경했다. 이날 서 장관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국방부는 “해경이 수색 작전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공유된 것으로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조류의 흐름을 고려할 때 북측으로 표류해 들어갔을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정부가 이 씨가 사살되기 전까지 국제상선통신망으로 북측에 구조 요청을 할 수 있었지만 연락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제상선통신망은 선박 간 통용되는 일종의 ‘음성 단톡방’이다. 북한도 국제상선통신망을 통해 지난해 6월 두 차례나 우리 측에 북한 표류 선박에 대한 구조 요청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 의원은 “자기 국민들을 파리 목숨 취급하는 이런 나라(북한)도 그 통신망을 통해 남쪽에 연락을 하는데, 어떻게 (이 씨가) 북한에 잡혀 있다는 걸 알았는데도, 그 통신망을 북한이 듣고 있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북한 쪽에 ‘우리한테 인계하라’는 말을 안 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서 장관은 “저희가 첩보를 가지고 북에다가 액션(구조 요청)을 취하기에는 조금 리스크가 있다”고 해명했다. 군 당국의 첩보 자산이 북에 노출되는 것을 우려했다는 취지였다. 서 장관은 “저희가 평상시 북한 선박이 떠내려오거나 표류자가 있으면 구조를 하듯이 이 씨도 구조될 것으로 생각했었다”고 했다. 또 “국제상선통신망은 해경도 (사용)할 수 있고, 국방부도 할 수 있고, 다 할 수 있다”며 책임을 해경에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은 “물리적으로 수색하는 것 못지않게 (실종 사실을) 알리는 게 목숨을 구하는 적절한 수단인데 그것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강 다리에 자살하려고 올라간 사람을 자살하려고 하기 때문에 안 구하느냐”며 이 씨의 월북 의사와 관계없이 구조에 최선을 다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이 이 씨를 발견하기 전 군이 사전에 가능성을 판단해 북측에 공조 요청을 했으면 과연 사살까지 이뤄졌겠느냐”고 전했다.
한편 서 장관은 10일 북한의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다양한 전략무기가 공개될 것으로 전망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다탄두, 재돌입체(재진입체) 이동식 발사차량 열병식은 가능성이 있느냐’는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의 질의에 서 장관은 “ICBM은 열병식 가능성이 좀 있다”고 답했다. 사실상 북한의 신형 ICBM 공개 가능성을 내비친 것. 서 장관은 또 ‘(신형 잠수함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6기 탑재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형태를 달리하는 등) 여러 가지로 진화되고 있다”며 북한이 지난해 7월 공개한 로미오급 개량형보다 큰 4000∼5000t급 신형 잠수함을 건조하고 있다고 사실상 시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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