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대법원을 시작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법사위 국감은 8일 헌법재판소, 12일 법무부, 19일 서울중앙지검, 20일 법원, 22일 대검찰청을 거쳐 26일 종합감사(법무부·대법원·헌법재판소·법제처 등)로 마무리된다. 이중 가장 주목받는 건 윤석열 검찰총장이 마이크 앞에 서는 대검찰청 국감이다.
지난해 10월 국감 이후 윤 총장이 공식석상에서 질의를 받는 건 거의 1년 만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비리 의혹 수사로 현 정권과 갈등을 빚은 이후 외부와는 철저히 거리두기를 해온 탓이다. 윤 총장은 그동안 좌천성 검찰 인사,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등 검찰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사안에 대해서 함구로 일관했다.
올 추석에도 윤 총장은 침묵을 지켰다. 윤 총장과 대척점에 서 있는 추 장관은 추석 연휴 첫날인 9월 30일, 상관의 폭언·폭행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故) 김홍영 검사의 사무실을 찾아 ‘검찰개혁’을 강조했다. 앞서 서울동부지검은 추석 연휴 이틀 전인 9월 28일, 추 장관 아들 서모 씨의 군 특혜 휴가 의혹 관련자 전원에게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윤 총장이 공식행사에 나타난 건 8월 3일 신임검사 신고식에서가 마지막이다. 이날 그는 신임 검사들 앞에서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한다”는 메시지를 내놓으며 현 정권을 에둘러 비판했다. 당시 이 발언을 놓고 검찰 내부를 비롯해 여러 여야 정치인들이 각자의 해석을 내놓으며 공방을 펼쳤지만, 정작 윤 총장은 다시금 침묵 모드에 들어갔다.
윤 총장이 올해 국감장에서 어떤 발언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거 국감에서처럼 윤석열표 ‘폭탄 발언’을 내놓을 것”이라 예측이 나오는가 하면 “8월 하반기 검찰인사로 수족이 다 잘려나간 상황에서 원론적인 얘기밖에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추측이 엇갈린다.
윤 총장 국감 어록,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윤 총장에게 이번 국감은 검사 자격으로 참석하는 마지막 국감이다. 그는 과거 국감에서 여러 어록을 남겼다.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10월 21일, 당시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이었던 윤 총장은 국감에서 예상치 못한 발언으로 국감장을 술렁이게 했다. 2012년 대선 국정원 댓글조작 수사팀장을 맡았으나 국정원 체포영장 청구보고를 누락했다는 이유로 수사에서 배제된 상태였다. 윤 총장은 당시 국감장에서 “이렇게 된 마당에 사실대로 말씀드리겠다”며 수사 초기부터 수사를 방해할 목적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관련이 있는 얘기냐’는 야당 의원 질문에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날 나온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한동안 화제를 모았다. 특히 이 말은 윤 총장이 징계성 좌천을 거듭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으로 수사 전면에 복귀할 때 또 다시 회자되기도 했다.
현 정부 들어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으로 승진한 윤 총장은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 책임자로 2017년, 2018년 국감에서 야당 의원들과 적잖은 충돌을 빚었다. 2017년 10월 23일 국감에서는 ‘적폐청산 수사가 정치보복이 아니냐’는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검찰은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수사의뢰를 받아서 범죄를 수사하는 사람들”이라며 “법에 따라 수사하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해인 2018년 국감에서는 ‘사법농단’ 수사 관련해 “어떤 사람을 타깃으로 하는 수사는 안하고 있다. 수사를 하다가 개별 법관의 어떤 비위가 나온다면 그건 할 수밖에 없다”며 자신의 소신을 강하게 드러냈다.
윤 총장과 야당 의원들의 기싸움에서 반전이 일어난 계기는 지난해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수사였다. 윤 총장은 지난해 10월 17일 대검 국감에서 야당이 아닌 여당 의원들로부터 질문 공세를 받았다. 이때도 윤 총장은 “정무감각이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며 수사에 어떤 정치적 고려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한 윤 총장은 ‘전 정부와 현 정부 간 정치적 중립 보장을 누가 더 잘하는 것 같냐’는 질문에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 측근과 형 등을 구속할 때 별 관여가 없었다. 상당히 ‘쿨’하게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며 현정부를 향해 돌직구를 날렸다. 그 여운은 지금까지 이어져 여당 의원들은 ‘윤석열 끌어내리기’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무너진 정치적 중립성 이제라도 지켜야”
그 이후 윤 총장은 수세에 몰렸다. 조 전 장관이 물러나고 후임으로 추미애 장관이 취임하면서 윤 총장의 입지가 한층 좁아졌다. 윤 총장이 신임했던 검찰 간부에 대한 좌천성 인사로 울산시장 선거 수사팀 등 윤 총장 보고 라인이 무너졌고, 대검에서도 검찰총장을 보좌하는 대검의 차장급 보직 4개(수사정보정책관·반부패강력부 선임연구관·공공수사정책관·과학수사기획관)도 다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윤 총장이 과연 이번 국감에서 어떤 발언을 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우선 윤 총장이 과거처럼 폭발력 있는 발언을 하기는 힘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검사 출신의 김영종 변호사는 “수사 관련 질문에 대해서는 원론적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했다’고 할 가능성이 크다”며 “의원 질의에 대한 답변 자료는 대부분 총장 밑에 참모들이 작성하는데, 현재 윤 총장 참모들 중에서 측근이라고 볼 사람이 없기에 윤 총장의 의중이 드러나는 답변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야권 대선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자칫 자신의 발언이 정치적 해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자극적인 발언은 피할 것이란 추측이 우세하다. 서울 서초동 한 변호사는 “자신을 대권 후보에 올려놓은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한 적이 있는 만큼 정치적 언급은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윤 총장 가족을 둘러싼 수사에 대해서도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최근 서울중앙지검은 윤 총장의 장모와 아내에 대한 고발사건을 형사6부에 재배당하면서 동시에 반부패수사1·2부에도 사건 검토를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부와 반부패수사부에 동시에 사건을 맡기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로, 추 장관 아들 의혹으로 궁지에 몰린 여권이 ‘윤석열 가족 수사’로 윤 총장을 견제하면서 현 정권 비리에 대해 ‘물타기’를 일삼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윤 총장은 과거 국감에서는 가족 수사와 관련해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2018년 국감에서 윤 총장은 장모 최씨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제가 관련이 돼 있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 이건 좀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라며 “국감장에서 이런 말씀하시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다”고 항변한 바 있다.
김영종 변호사는 “이번 국감에서는 이미 무혐의 판결을 받은 사건들을 재수사하는 것에 대해 가족으로서 화가 많이 날 테지만, 예전처럼 본인 감정을 다 드러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가족 관련 수사는 일체 보고받지 않고 관여하지도 않는다’고 답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윤 총장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국감이라서 “검찰조직 수장으로서 할 말은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크게 들린다. 김경수 전 대구고검장은 “다른 건 몰라도 추미애 장관이 횡포에 가까운 인사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부분에 대해서는 검찰 수장으로서 윤 총장이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지금까지는 윤 총장이 정권에 저항하지 않고, 얌전히 임기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여권에 대한 견제라는 생각이 가능했지만, 더 이상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임기를 채우는 것도 물론 중요한데, 현재 상황에서는 추 장관이나 대통령이 윤 총장을 막무가내로 찍어낼 수는 없지 않느냐”며 “윤 총장 본인이 쥐고 있는 임기 보장권을 무기 삼아 추 장관의 잘못된 검찰 인사, 그리고 그로 인해 무너져 내린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등에 대해 검찰 조직의 대표자로서 반드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윤 총장이 침묵을 깨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금 시국을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느끼는 측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서울동부지검장을 지냈던 석동현 변호사는 “추미애 장관 아들을 수사한 서울동부지검이 편향된 결정을 내렸지만 어느 누구도 그걸 바로잡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없다”며 “검찰의 중립성 회복, 법치주의, 나아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국감장에서 침묵을 깨야 한다”고 말했다. 석 변호사는 이어 “윤 총장의 침묵은 너무 길었다. 조직의 수장으로서 검사의 선서에 명시된 헌법, 형사소송법, 검찰청법을 지키자는 원칙이라도 언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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