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혁 주미대사(오른쪽)가 지난해 12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대사 신임장 수여식에 참석해 청와대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다. 이 대사는 1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앞으로도 미국을 사랑할 수 있어야, 우리 국익이 돼야 미국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화대사진기사단
미국 국무부가 12일(현지 시간) 한미 동맹을 “극도로(extremely)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밝혔다. 이수혁 주미 대사가 이날 주미 대사관 국정감사에서 “한국은 70년 전에 미국을 선택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70년간 미국을 선택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 것에 대한 반박 성격의 발언이다. 미 국무부가 상대국 외교관의 발언을 즉각 반박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어서 이 대사의 발언이 한미 관계에 악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무부 대변인실은 이날 이 대사의 발언에 대한 언론의 질의에 “우리는 70년 역사의 동맹 및 미국과 한국, 역내 전체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한미 동맹이 이룩한 모든 것을 극도로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답변했다. 이어 “한미 양국은 동맹으로 지역 내 새 도전들에 맞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무부 내에서는 이 대사의 국감 발언에 대해 ‘도대체 진의가 뭔지 모르겠다’는 의아한 반응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대사가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나라” 등의 발언으로 논란이 됐는데도 계속 오해를 살 수 있는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한 불쾌감도 감지됐다.
주미 대사관은 해명자료를 통해 “한미 동맹은 가치 동맹이자 포괄적 전략 동맹”이라며 “이 대사의 발언은 한미 동맹이 한미 양국 국익에 부합하여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에 강력하게 지속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취지”라고 밝혔다.
하지만 외교가에선 미중 갈등과 북핵 해법 등 민감한 이슈가 불거진 상황에서 대미외교 현장 사령탑인 주미 대사가 오히려 한미 관계에 부담을 주는 발언을 내놓아 한미 동맹에 ‘이수혁 리스크’가 부상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한미 관계에 정통한 전·현직 관료들은 미국이 불쾌감을 뚜렷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미 대사를 지낸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1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미 국무부가 바로 반응을 내놓은 것은) 이 대사가 한미 간에 합의된 현재의 정책과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상식적으로 특정국의 주재 대사가 그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를 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정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일각에선 이 대사가 주미 대사의 본분보다 여권과 ‘코드’를 맞추는 일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전직 외교 고위 당국자는 “이 대사가 워싱턴에서 국내 정치를 하고 있다”며 “한미 동맹이 국익에 맞지 않는 것처럼 함부로 발언해 국익을 손상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 대사의 발언은 동맹 경시 같은 잘못된 신호를 미국에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음 달 미 대선을 비롯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핵추진 잠수함을 위한 핵연료 수입 등 한미 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이 대사의 논쟁적 발언이 부메랑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핵추진 잠수함 개발의 경우 미국은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이를 한국에 허용할 가능성이 있었을 텐데 이 대사의 발언은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고 했다.
야당에선 그의 발언을 두고 ‘사퇴론’까지 등장했다. 국민의힘은 13일 성명에서 “이 대사의 발언은 70년간 이어온 양국의 가치동맹을 이익타산의 산물로 폄하하는 경솔하고 편향적인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은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의 주미 대사 정도 되면 이제 더 이상 국민 헷갈리게 만드는 잠꼬대 같은 소리 그만했으면 좋겠다”며 “소양과 자질이 그 자리에 감당이 안 되면 국익을 위해서 소임을 사양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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