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을 둘러싼 불협화음이 불거진 가운데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비공개로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고위 인사들과 연쇄 접촉에 나섰다. 서 실장의 방미는 7월 국가안보실장 취임 이후 처음이다. 워싱턴에서 제52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가 열리는 가운데 서 실장의 전격 방미를 두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한미 방위비 협상, 대(對)중국 압박 동참 등을 두고 커지고 있는 한미 동맹 균열을 일단 봉합하기 위해 상황 관리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소방수’ 격으로 워싱턴에 급파됐다는 것.
서 실장의 방미는 미 국무부가 14일(현지 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서 실장의 면담 일정을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미 국무부는 “15일 오후 3시 폼페이오 장관이 서 실장을 국무부 청사에서 면담할 계획”이라며 “면담 내용은 비공개”라고 밝혔다. 미 국무부가 한국 국가안보실장의 방미 일정을 먼저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서 실장 방미 사실을 공개하지 않던 청와대는 국무부 발표 후 강민석 대변인 명의의 서면 브리핑을 내고 서 실장의 방미 사실을 알렸다. 청와대 관계자는 “카운터파트인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등으로 대면 회동이 몇 차례 늦춰진 끝에 직접 미국을 방문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대선(11월 3일)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인 서 실장이 4박 5일의 짧지 않은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한 것을 두고 트럼프 행정부를 달래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당장 14일 열린 SCM에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전작권 전환, 주한미군 방위비 인상은 물론이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 동참 등에 대한 전방위 압박을 쏟아내는 등 한미 동맹의 이상 신호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상황에서 방미가 이뤄졌기 때문. 서 실장이 SCM이 열린 14일 백악관에서 오브라이언 보좌관을 만난 가운데 청와대는 회동 결과에 대해 “한미 동맹이 굳건함을 재확인했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오브라이언 보좌관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트위터를 통해 “우리의 철통같은(ironclad) 동맹은 어느 때보다 굳건하며 모든 지역과 국제적 도전(global challenges)을 이겨낼 수 있도록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폼페이오 장관과의 회동에선 반중 전선 참여 문제, 한미 방위비 협상, 종전선언 구상 등 좀 더 구체적인 사안이 테이블 위에 올랐을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당초 7, 8일로 예정된 방한 계획을 취소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일본 호주 인도 등 4국 협력체 회의인 ‘쿼드(Quad) 외교장관회의’가 열리는 일본만 방문하고 돌아갔다. 여권 관계자는 “서 실장은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폼페이오 장관은 물론이고 지나 해스펠 현 CIA 국장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등 2기 외교안보 라인 중 트럼프 행정부와 두터운 소통 채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대화 재개 방안으로 제안한 종전선언에 대한 설득에도 나섰을 수 있다. 청와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선제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미 대선 이후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보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사실상 내년 초까지가 종전선언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보고 있다”며 “최근 남북 정상 간 친서와 열병식 메시지 등에 대한 정부의 분석을 전달하고 대화 모멘텀을 만들기 위한 논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는 수준에서 논의가 있을 것”이라며 “미국 내 분위기를 고려하면 종전선언 등의 얘기는 쉽게 꺼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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