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국정감사에서 처음으로 정치 참여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딱 부러지는 차기 대선 후보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보수야권이 일순간에 들썩이고 있다. 23일 국민의힘 안팎에선 윤 총장에 대한 찬사와 견제가 엇갈렸고, 자질에 대한 우려도 쏟아져 나오는 등 윤 총장에 대한 복잡한 시선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윤 총장은 23일 새벽까지 이어진 국감 막바지에 “임기 후 정치를 할 마음이 있느냐”는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의 질문이 나오자 “소임을 다 마치고 나면, 저도 우리 사회의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회와 국민들을 위해서 어떻게 봉사할지, 그런 방법은 천천히 한번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김 의원이 재차 “‘그런 방법’에 정치도 들어가느냐”고 묻자 윤 총장은 “그것은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시인도 부인도 안한 것이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우선 윤 총장 일가의 고향(충남 공주)인 충청권 의원 등은 기대감을 강하게 드러냈다. 총선에서 윤 총장을 대선 후보로 만들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쳐왔던 정진석 의원(충남 공주·부여·청양)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국감에서 보인 모습이 답답하고 지친 국민에게 새로운 영감과 기대를 불러일으켰다”면서 “정치 전선에 뛰어든다면 충청권의 반응은 폭발적일 것”이라고 했다. 홍문표 의원(충남 예산·홍성)의원은 “국감 뒤 지역민들의 기대 섞인 전화를 많이 받았다. 당의 문을 열려있다”고 했다. 검사 출신 김웅 의원은 페이스북에 “법사위 국감은 영화 글래디에이터 보는 것 같았다”면서 “백전불굴의 장군을 묶어놓고 애송이들이 모욕하고 온갖 공작을 동원하지만 결국은 ‘넘사벽’ 실력차를 넘지 못했다”고 호평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현재 야권에선 대선 후보 여론조사 지지율이 10%가 넘는 주자가 없는 만큼 수차례 여론조사에서 야권 1위를 기록한 윤 총장의 영입은 필연적 아니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 총장 수사로 사실상 ‘폐족’ 선고를 받았던 친박(친박근혜) 친이(친이명박)계들 과 당 지도부에서는 조심스러운 반응도 나왔다. 국민의힘의 한 비대위원은 “윤 총장의 인기는 개인에 대한 지지보다는 반(反) 문재인 진영의 반사이익인 만큼 쉽게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지난 대선에 출마했던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서울중앙지검장 때 소위 적폐수사를 지휘하면서 이재수 기무사령관을 모욕 줘 자살에 이르게 하고 청와대 말단 행정관까지 깡그리 적폐로 몰아 싹쓸이 수사한 공으로 벼락출세한 사람”이라며 “우리를 그렇게 모질게, 못살게 굴던 사람을 우파 대선 후보 운운하는 것도 아무런 배알도 없는 막장 코미디”라고 견제구를 날렸다. 국민의힘 청년 당원 중 일부는 윤 총장이 국감장에서 책상을 치거나 삿대질을 하고 반말조의 답변 태도를 보인데 대해 “‘전형적인 검찰 꼰대’ 모습으로 3040세대와 중도층으로의 확장성이 심히 우려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윤 총장의 정계 진출 가능성에 대해 “퇴임하고서 봉사한다는 게 반드시 정치하겠다고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다”며 “그런 점에서 확실한 증거도 없는데 뭐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평소 화법을 감안하면 호감 섞인 평가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대통령 후보 선출을 선거일 120일 전까지 하도록 돼 있는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2022년 3월 9일 치러질 대선을 위해선 2021년 11월 10일까지 당내 경선이 마무리 돼야 한다. 이에 따라 7, 8월경 대선 경선이 치러지면, 7월 24일 임기를 마치는 윤 총장이 야당 주자로 뛰어드는 데는 일정상 문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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