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9시 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시작하자마자 지도부 입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한 맹비난이 쏟아졌다. 민주당은 전날(22일)부터 이날 새벽까지 이어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윤 총장이 보여준 언행을 두고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었다’는 분위기다. 다만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의 자진 사퇴를 직접 요구하기보다는 윤 총장의 태도를 문제 삼으며 “이래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이 시급하다”며 명분 쌓기에 주력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이번 ‘윤석열 국감’을 명분 삼아 공수처 출범을 더욱 거세게 밀어붙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은 이날 국민의힘이 야당 몫의 추천위원 추천을 26일까지 하지 않을 경우 27일 곧장 법사위 소위를 열어 공수처 모법 개정을 강행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 “윤석열 때문에라도 공수처 출범해야”
이낙연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전례 없이 강한 어투로 윤 총장을 비난했다. 이 대표는 “어제 대검 국감에서 나온 발언과 태도는 검찰 개혁이 왜, 그리고 얼마나 어려운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냈다”며 “민주적 통제가 더욱 절실해졌고 검찰 스스로 잘못을 고치기 어렵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공수처는 더 시급해졌다”며 “야당에 요청한 추천위원 제시 시한이 이제 사흘 남았다. 법사위는 그 이후 입법 절차를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검찰은 국민 통제를 받지 않는 성역화된 권력기관이 아니다”며 “민주당은 공수처 출범을 위해 노력하고 민주적 견제와 균형에 따라 검찰 개혁을 지속 추진하겠다”고 했다.
○ “민주주의 기본 원리 몰라” “안하무인” 원색 비난
민주당은 윤 총장을 향해 총공세에 나섰지만 윤 총장의 향후 거취와 관련해서는 말을 아꼈다. 전날 윤 총장이 퇴임 후 정계 진출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은 만큼 괜히 여권에서 윤 총장 사퇴를 먼저 언급했다가 자칫 윤 총장의 ‘정치적 중량감’만 키워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 대신 “민주주의 의식이 우려스럽다”면서 윤 총장이 예비 정치인으로서도 자질이 없다는 주장을 부각시켰다. 황운하 의원은 페이스북에 “총장의 민낯을 본 많은 국민들은 검찰이 얼마나 위험한 조직인지 실감했으리라고 본다”며 “조직 논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집단은 마피아 조직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법사위원인 신동근 최고위원은 라디오에서 “안하무인 격의 태도”라며 “본인 의사에 맞지 않는다고 책상을 치고 끼어들기를 하고 심지어 질의자를 비웃거나 면박을 주기도 하더라”고 했다. 노웅래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윤 총장의) 독단과 아집이 도를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며 “자신만이 옳다는 자기 정의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정청래 의원은 페이스북에 “검찰총장을 검사 출신만 해야 한다는 발상은 후진적 사고”라며 “검찰총장도 선출직으로 민간이 하는 것을 적극 검토할 시기”라고 적었다.
청와대도 ‘정치인 윤석열’의 모습에 복잡미묘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날 청와대 내부에선 “윤 총장이 정면으로 청와대에 반기를 들었다” “이 정도면 청와대에서 자신을 잘라 달라는 뜻 아닌가”라는 불쾌한 기류가 강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앞서 “청와대든 정부든 여당이든 만에 하나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공정한 자세로 임해 주시길 바란다”며 윤 총장을 임명했던 만큼 비판만 하기에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며 발언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한 여권 관계자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 총장이 연일 충돌하는 것이 국정 운영에 상당한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공수처부터 출범시킨 뒤 연말로 예상되는 다음 개각 때 추 장관과 윤 총장이 동시에 물러나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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