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전(全) 당원 투표 결과를 토대로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천 방침을 2일 확정했다. 하지만 투표율이 26.4%에 그친 데다 당헌·당규의 유효투표 기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전 당원 여론조사’였다고 말을 바꿨다.
민주당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명문화한 ‘무(無)공천’ 약속(당헌 96조 2항)을 개정하기로 결정했다. 지난달 31일부터 1일까지 이틀간 권리당원들을 상대로 진행된 ‘당헌 개정을 통한 내년 보궐선거 후보 공천’ 여부를 묻는 온라인 투표에서 찬성률 86.6%가 나온 데 따른 것이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많은 당원들께서 당헌 개정에 뜻을 모아주셨다”며 “이후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이 거친 전 당원 투표 결과가 당헌·당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 당규에 따르면 ‘전 당원 투표는 전 당원 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투표’로 명시돼 있다. 전 당원 투표 결과가 유효투표율을 충족하지 못한 것. 이에 민주당은 “이번에 실시한 투표는 의결 절차가 아니라 (당원들의) 의지를 묻는 것”이라며 유효투표 조항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당헌 개정 여부를 전 당원 투표에 부쳐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2일 “민주당은 정직성을 상실했다”고 비판했다. 정의당도 “말 바꾸기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당원들에게 책임을 미룬 민주당 지도부의 비겁한 행태”라고 논평했다.
▼ 與 ‘26% 투표율’ 효력 논란일자 “당원 의견 물어본 것” 말바꿔 ▼
서울-부산 시장후보 공천 결정
더불어민주당이 전(全) 당원 투표를 근거로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 공천을 결정한 것을 두고 집권여당이 책임 정치를 스스로 내팽개쳤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전 당원 투표라는 형식을 빌려 당헌을 뒤집는 결정을 내린 것 자체가 책임을 회피하려는 당 지도부의 ‘꼼수’라는 것이다. 특히 당헌 개정의 근거로 내세운 전 당원 투표를 두고 효력 논란까지 일면서 “(당원들의) 압도적인 의지”라고 했던 당 지도부는 민망한 상황에 직면했다.
○ 이낙연 대표 “공당의 책임 있는 자세”
민주당은 2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이낙연 대표는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려고 하는 것은 유권자의 선택권을 존중해 드리는 것이 공당의 책임 있는 자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철저한 검증과 공정한 경선 등으로 가장 도덕적이고 유능한 후보를 찾아 유권자 앞에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2015년 문재인 당 대표 체제 때 정치 혁신의 일환으로 도입된 ‘무(無)공천’ 원칙은 5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민주당은 지난달 31일부터 1일까지 이틀간 전 당원 투표를 통해 당헌을 개정해 내년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공천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물었다. 권리당원 21만804명(26.4%)이 참여해 86.6%가 찬성했다. 당헌 96조 2항은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잃으면 재·보궐선거에 공천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따른다면 민주당은 서울·부산시장 선거에 후보를 낼 수 없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모두 성추문으로 자리를 비우게 됐기 때문이다.
○ 전당원 투표 효력 싸고 논란
민주당 전 당원 투표의 효력을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전 당원 투표의 최종 투표율은 26.4%에 그쳤다. 당헌·당규에 따르면 전 당원 투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투표율이 3분의 1 이상이어야 하는데 기준에 미달했다.
이를 감안한 듯 여권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친노(친노무현)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이날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명분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세상이 너무 탐욕스러워지는 것 같다”며 “(4·15총선 당시) 비례위성정당을 저쪽(야권)에서 만드니깐 아주 천벌 받을 짓이라고 해놓고 똑같이 천벌 받을 짓을 했다. 이번 당헌·당규를 뒤집은 것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양향자 최고위원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여당 지도부이기 전 한 여성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민주당 공보국은 “(이번) 전 당원 투표는 의결 절차가 아닌 당원들의 의견을 묻고자 하는 투표였다”며 “‘당규 제2호 제9장 권리당원 전원투표’에 명시된 규정은 권리당원의 청구로 이뤄지는 전 당원 투표에 관한 것으로 지난 주말 실시한 전 당원 투표와는 별개의 조항”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전 당원 투표는 ‘의견 수렴용’으로 당규에 명시된 전 당원 투표와는 별개라는 논리다. 또 4·15총선 때 ‘비례정당 참여 여부를 묻는 전 당원 투표’(30.6%), ‘더불어시민당 합당 여부를 묻는 전 당원 투표’(22.5%) 역시 투표율이 3분의 1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문제가 없다고도 했다.
민주당은 이날 당무위원회에 이어 3일 중앙위원회를 거쳐 당헌 개정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중앙당 공직선거후보자 검증위원회와 선거기획단을 이달 중순까지 구성해 본격적인 선거 준비에 돌입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자정 노력의 일환으로 윤리신고센터와 젠더폭력신고상담센터를 열고 성인지 교육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 대표는 이날 “당원들의 뜻이 모아졌다고 해서 서울과 부산의 시정에 공백을 초래하고 보궐선거를 치르게 한 저희들의 잘못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며 서울·부산 시민을 비롯한 국민과 박 전 시장 관련 피해 여성에게 거듭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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