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트럼프 정부와 이뤄낸 소중한 성과가 차기 정부로 잘 이어지고,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의 당선을 언급하며 이같이 밝혔다. 바이든 당선인에 대한 첫 육성 메시지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계속 추진해 나가겠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9월 유엔총회 연설 때부터 줄곧 강조해온 종전선언에 대해선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선(先)종전선언 구상이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행동을 요구하는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와 충돌할 수 있다는 ‘현실’을 감안해 이전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 종전선언 대신 세 차례 ‘평화 프로세스’ 강조한 文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둘도 없는 우방국이자 든든한 동맹국으로서 우리 정부는 미국 국민의 선택을 절대적으로 존중하고 지지할 것”이라며 “새로운 행정부를 준비하는 바이든 당선인과 주요 인사들과도 다방면으로 소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날 트위터를 통해 당선 축하 메시지를 보낸 문 대통령이 바이든 당선인을 ‘대통령 당선인’으로 공식적으로 호칭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미동맹 강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에 어떠한 공백도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면서도 그동안 수차례 강조해온 종전선언이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신뢰관계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 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흔들림 없이 추진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며 세 차례에 걸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강조했다. 트럼프 정부와 추진해온 종전선언이 김대중 정부와 빌 클린턴 정부 당시 합의된 평화체제 구축의 일환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바이든 당선인과의 주파수 맞추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미국 민주당 정부는 한국의 민주당 정부와 평화 프로세스를 긴밀히 공조하고 협력해온 경험이 있다”고 공지한 뒤 “남북관계에서도 새로운 기회와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가 추진해온 ‘선(先)종전선언’ 구상이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와 엇갈릴 수 있다는 관측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당선인은 선거 기간 중 “핵 비축량 감축에 동의하는 경우에만 김정은을 만날 것”이라며 북-미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요구한 상황. 종전선언으로 비핵화 대화 재개의 물꼬를 트자는 문 대통령의 구상과는 거리가 멀다. 이와 관련해 외교안보라인 핵심 관계자는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 톱다운 식 협상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실무선에서 북-미 대화가 재개되고 한반도에 전쟁 위험이 없도록 상황관리를 해나가는 데 중점을 두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방문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역시 이날 종전선언 논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상황이 이렇다, 저렇다 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 바이든 정부 들어서도 ‘남북 당사자론’ 강조할 듯
다만 청와대는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정상회담을 통한 종전선언을 추진한다는 기존 구상은 흔들림 없이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새로 출범할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북-미 대화의 유산을 완전히 청산하고 오바마 시절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실제로 강경화 장관은 “바이든 쪽 여러 인사가 공개적으로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그때(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로 돌아간다는 것은 아닐 것 같다”며 “지난 3년간 (트럼프 정부가 해온) 여러 경과나 성과를 바탕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수보회의에서 “한미 간 튼튼한 공조와 함께 남과 북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해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며 ‘남북 당사자론’도 재차 꺼내들었다. 남북관계를 통해 북-미 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이른바 선순환 구상을 강조한 것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이날 기자들과 만나 바이든 당선인에 대해 “평화의 현자가 돼 우리 겨레에 좋은 친구로 다가오길 소망한다”며 “(미국 정권 교체기) 남북, 북-미 간 합의를 이행하고 비핵화에 전향적 의지를 보여주면 남북 간 평화 협력의 공간이 확대되는 성과를 다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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