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 폐쇄 과정에 연루된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한 가운데 검찰 안팎에서는 이 같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5일 청와대와 산업부,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의 자택과 사무실 등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한 지 며칠 만에 산업부 관계자들이 감사원 감사를 방해하기 위해 증거인멸을 한 혐의부터 수사선상에 올렸다. 검찰은 증거 인멸 경위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월성 1호기에 대한 경제성 평가 조작 등 조기 폐쇄 관련 의혹의 본류가 드러날 것으로 보고 있다.
○ 조기 폐쇄 업무 총괄한 산업부 국장 조사
대전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상현)가 11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산업부 A 국장은 2017년 8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원전산업정책관을 맡아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업무를 총괄해온 실무 책임자다. A 국장은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 에너지자원실장과 함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관여한 산업부 ‘지휘 라인’이다.
A 국장은 2018년 4월 백 전 장관이 청와대 지침에 따라 “월성 1호기를 즉시 가동 중단하라”고 지시하자 정재훈 한수원 사장에게 이 같은 지시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A 국장은 감사원의 감사 과정에서 “한수원이 진행 중인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에서 원전 이용률이 높게 나오면 곤란하다는 얘기를 정 사장에게 전달했다”고 시인했다. 당초 산업부는 2.5년, 4.4년 추가 가동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해 오다가 청와대 지침을 받은 뒤 ‘즉시 중단’으로 입장을 바꿨다.
A 국장은 지난해 11월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원전산업정책과 B 과장과 C 서기관을 불러 “모든 매체에 저장된 관련 자료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C 서기관은 이 지시에 따라 감사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 심야에 사무실에서 원전 조기 폐쇄 관련 문건 444건을 삭제했다. 삭제 작업은 복구를 어렵게 하기 위해 파일명을 수정해 다시 저장한 뒤 삭제하는 등 치밀하게 이뤄졌다. 당시 삭제된 문건 중에는 ‘BH(청와대) 보고’ 문건인 ‘에너지 전환 후속조치 추진계획’ 등도 포함됐다.
산업부 측은 감사원 조사에서 “직원들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자료를 삭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감사원 감사를 방해하기 위해 증거를 인멸한 것은 전형적인 증거인멸로 그 입증이 비교적 명백하다”고 말했다.
감사원법에 따르면 감사원의 자료제출 요구에 따르지 않는 공무원과 감사를 방해한 자의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 수사 칼날, 청와대로 향할 가능성
검찰 수사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과정에서 청와대의 불법적 개입이 있었는지를 밝히는 쪽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2018년 당시 대통령산업정책비서관이었던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과 백 전 장관의 자택과 집무실, 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했고, 이르면 다음 주 백 전 장관을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백 전 장관의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 원전 조기 폐쇄와 증거인멸 과정에 청와대 인사가 개입됐는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당시 대통령산업정책비서관실 행정관으로 파견돼 근무했던 산업부 과장급 공무원 2명의 자택과 휴대전화 등도 압수수색했다. 이들은 당시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서 청와대와 주무부처인 산업부의 가교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채 사장에 이어 함께 근무했던 실무자들까지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검찰 수사의 칼날이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감사원 감사 결과 채 사장은 2018년 4월 2일 이들 행정관에게 “산업부로부터 월성 1호기를 즉시 가동 중단하는 것으로 장관까지 보고하여 확정한 보고서를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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