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일 한일관계 변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그 배경이 주목받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전개할 동북아 외교를 대비하는 차원이라는 분석이 13일 제기된다.
정부는 미국 대선을 전후로 일본과의 소통에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 대선을 전후로 한 한일 소통의 시작은 지난달 중순 방한한 가와무라 다케오 자민당 간사의 방한이었다.
가와무라 간사장은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오른팔’인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의 최측근이다. 니카이파의 ‘2인자’로 꼽혀 당시 방한에서 우리 측에 어떤 메시지가 전달될지 주목된 바 있다.
가와무라 간사장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을 면담하며 한일 간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입장을 전하고 한국 내 관련 동향을 청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다키자키 시게키 일본 외무성 국장이 지난달 말 방한해 공식적인 당국 간 소통을 했다. 일본에서 스가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먼저 한국과의 관계에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런데 우리 측에서 이 같은 일본 인사들의 방한에 대한 답방으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일본을 찾았다. 가와무라 간사장과는 급이 맞지 않는 인사가 움직이자 청와대가 박 원장을 사실상 대통령 특사 성격으로 파견한 것이라는 관측이 뒤따랐다.
박 원장은 일본 방문을 전면적인 공개활동으로 진행했다. 정보 당국 수장의 동선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무색하게 출국, 주요 인사 면담, 귀국의 과정이 모두 공개됐다. 스가 총리와도 면담해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우리 측의 입장을 두루 전달했다는 사실도 직접 밝혔다.
전날 일본을 찾은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김진표 민주당 의원 등 7명의 여야 의원도 스가 총리와 면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행보는 이례적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스가 총리의 집권 직후에도 한일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결을 한중일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언급하는 등 대립각을 세운 바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대통령이 교체되는 상황과 맞물려 정부의 대일 ‘제스처’로도 해석되고 있다. 당선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향후 한일, 한미일 협력 관계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미국의 외교를 구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문 대통령의 임기 내에 또 한 번 남북관계의 전면적 대화 전개를 구상하고 있다. 나아가 북미 대화 재개를 통해 한반도에 대화와 평화 국면을 장기적으로 안착시키는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다만 바이든 후보가 선거 유세 과정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폭군’으로 지칭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을 따르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면서 미국의 새 행정부가 정부의 대북 정책을 지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바이든 측의 이 같은 기조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맞대결 차원에서 나왔을 가능성도 있지만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로 북한과의 장기 냉각을 경험했던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우려를 제기할 수도 있는 부분인 것이 사실이었다.
따라서 미국이 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일, 한미일 협력 관계 수립을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임으로서 대북 정책 추진을 위한 미국의 지지를 이끌어 낼 기반을 만들 수 있다는 구상이 반영됐을 수 있다.
일본은 이 같은 우리 측의 움직임에 대해 아직 ‘의도 파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한국 법원이 일본 기업들의 자산 매각을 결정한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확약’이 있어야 한일관계 개선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아직 정부는 이 같은 일본의 입장을 반영한 관계 개선 방안까진 구상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 자산 매각을 제외한 ‘배상안’을 마련해 일본 측에 의견을 타진했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강제징용 문제가 위안부 문제와는 달리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보다는 ‘배상’에 초점이 맞춰진 문제라는 분석과 함께다.
정부는 일단 바이든 행정부의 공식 출범, 대외 정책 수립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다는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한일관계 해법에 대해서도 ‘전력 질주’보다는 속도를 일부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당장 연말 개최 가능성이 제기된 한중일 정상회담의 성사 여부가 정부의 대일관계 개선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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