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정부가 전세대책을 발표하기 전후로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호텔방 전세’, 국회 국토위원장이자 민주당 미래주거추진단장인 진선미 의원의 ‘아파트 환상 버리라’는 발언이 잇따라 나오자 여권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안 그래도 부동산정책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정청 고위 인사들의 잇따른 부동산 실언이 점차 강도를 더해가며 이젠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을 밑동까지 무너뜨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러다간 내년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차기 대선을 앞두고 정부 여당이 ‘부동산 블랙홀’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당정청 인사들의 부동산 실언은 장하성 전 대통령정책실장(현 주중 대사)에게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부동산 현실과 동떨어진 ‘유체이탈’ 화법이란 지적을 받은 첫 공개 발언이다. 2018년 9월 당시 장 실장은 TBS 라디오에서 “모든 국민이 강남 가서 살려고 하는 건 아니다. 살아야 될 이유도 없다. 저도 거기(강남)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은 현재 30억 원까지 오른 서울 송파구 아파트에 살면서 “나는 강남 살지만 국민들은 살 이유가 없다”는 메시지로 해석됐다.
올해 7월 임대차 3법 처리를 앞두고선 부동산 값이 치솟은 서울을 폄훼하는 듯한 발언도 나왔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서울을 한강 배 타고 지나가면 저기는 얼마, 저기는 몇 평짜리 (라고들 한다)… 이런 천박한 도시를 만들면 안 된다”고 한 것. 진성준 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시기 토론회에 나와 상대방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게 국가 경제에 부담이 된다”고 하자 “그렇게 해도(부동산대책을 내놔도) 안 떨어진다. 부동산 뭐 이게 어제오늘 일인가”라고 한 장면이 나중에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이런 정부 여당의 부동산 발언 논란은 임대차 3법 시행 후 전세대란이 현실화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낙연 대표, 진선미 의원 외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일 국회 기획재정위에 나와 전세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질문에 “확실한 대책이 있으면 정부가 발표했을 것”이라며 사실상 무대책 상황임을 시사하더니, 청와대에서 국토교통비서관을 지낸 윤성원 국토부 1차관은 라디오에서 임대차 3법에 대해 “우리 경제가 한 번은 겪어야 될 성장통”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부동산 문제를 놓고 수년간 당정청 인사들은 왜 이렇게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경제 문제인 동시에 계층 갈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이슈에 대한 정책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다 보니 인식 자체가 왜곡되는, 일종의 인지부조화 현상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최근 당정청 인사들의 부동산 관련 발언은 말실수가 아니라 부동산시장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 인식이 드러난 것”이라고 한 뒤 “마치 부동산시장을 계몽하겠다는 인식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규제 일변도 부동산정책이 완전무결하고 문제가 없다고 옹호하려다 보니 국민을 들끓게 하는 무리한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대차 3법을 조기에 안착시키고 전세시장을 기필코 안정시키겠다”고 한 뒤 부동산 관련 발언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온 나라가 (부동산 문제로) 뒤집혀도 문 대통령은 꼭꼭 숨었다. 비겁한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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