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5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공공기관위원회 합의를 통해 사실상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공식화했다. 당장 12월 정기국회에서 이 문제로 인한 여야 간 이견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가 노사정 사회적 대화의 틀을 통해 “국회가 조속히 법 개정 논의를 해 달라”고 요구한 만큼 제도 도입을 위한 ‘사전 포석’이 끝났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노동이사제 도입이 민간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경제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 노동이사제 가시화에 경제계는 우려
25일 마련된 경사노위 공공기관위의 합의문에는 노정(勞政)이 노동이사제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직접적인 표현이 없다. 하지만 경사노위 측은 “정부와 공공기관 노조가 함께 국회에 ‘도입 논의를 해 달라’고 발표한 만큼 충분히 방향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 역시 “합의문 그대로 해석해 달라”면서도 “노동이사제는 국정과제로 정부의 추진 의지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국회에 계류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안을 보면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노동이사제의 ‘골격’이 나온다. 김경협 의원 등 민주당 의원 16명이 제출한 공운법 개정안은 “공기업 비상임이사 중 근로자 대표의 추천을 받은 사람이 1명 이상 포함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같은 당 박주민 의원이 낸 개정안은 노동이사를 상임이사로 임명해 경영에 직접 참여하도록 했다.
정부와 공공기관 노조는 국회가 노동이사제 관련 개정안을 마련하기 전까지 ‘노조 추천 이사제’ 도입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들은 “노조가 적합한 인사를 추천하는 경우 현행법상 절차를 거쳐 비상임이사에 선임이 가능하도록 함께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그동안 정부가 수용에 난색을 보이던 조항이다.
경제계는 정부와 공공기관 노조의 이번 합의가 노동이사제 민간 도입의 ‘신호탄’이 될지 우려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미 국내 노사관계는 노조 측에 힘이 많이 실린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이사회까지 노조가 장악하면 노사 갈등이 상시로 벌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노동계 지지를 받은 노동이사가 회사의 기본 경영 방향과 사사건건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 원론 수준에 그친 공공기관 직무급제
정부와 공공기관 노조는 이번에 공공기관의 직무급제 도입 방침에도 합의했다. 직무급제는 업무 난이도와 성격, 책임 강도 등에 따라 급여가 다른 것으로 정부가 공공기관 방만 경영을 막기 위해 도입을 추진해 왔다.
양측은 이번 합의문을 통해 “객관적 직무가치가 임금에 반영되는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노력한다”고 선언했다. 다만 기관별 특성을 반영하고, 개별 기관의 노사 합의를 통해서만 추진하기로 한 만큼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도입은 “제도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수준의 원론적 합의에 그쳤다.
그나마 노조의 반발에 직면할 경우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성명에서 “직무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은 기획재정부가 일방적으로 제시한 내용만 담아 추진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제1노총인 민노총은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에 가입하지 않아 이번 합의에서 배제된 상태다.
경사노위는 내년 4월 공공기관위 2기 위원회를 꾸려 구체적인 임금체계 개편 등을 논의할 방침이다. 공공기관위 위원장인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합의는 공공기관 노조와 정부의 역사적인 대타협”이라며 “앞으로 사회적 대화의 장에서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과 노동이사제 추진 등을 다룰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노동이사제 ::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해 발언권과 의결권을 갖고 회사 경영 사안에 권한을 행사하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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