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 의견 있어 표결”…7분 45초 만에 공수처법 기습 통과시킨 與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8일 18시 07분


더불어민주당 법사위원들이 8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기립하여 찬성하고 있다. 2020.12.8/뉴스1 © News1
더불어민주당 법사위원들이 8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기립하여 찬성하고 있다. 2020.12.8/뉴스1 © News1


“찬반 의견이 있기 때문에 토론을 종결하고 표결하도록 하겠습니다”

8일 오전 10시 30분경 취재진을 막은 채 비공개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백혜련 안건조정위원장이 안건조정위에 회부된 공수처법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던 야당 의원들이 말을 가로막고 이렇게 선언했다.

당황한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이 “아니 무슨 소리야”라고 소리쳤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도 “위원장 역사가 두렵지 않나. 하늘이 두렵지 않나. 자신이 부끄럽지 않나”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하지만 백 의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표결을 선포한다. 찬성하는 분 일어서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백 의원 및 박범계, 김용민 의원,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이 일어났다. 오전 9시15분에 개의한 안건조정위가 공수처법 개정을 의결한 것은 10시32분. 여당의 입법폭주 속에 민주적 절차를 보장하기 위해 90일간 활동하도록 한 안건조정위가 불과 77분 만에 범(凡)여의 단독 처리로 마무리된 것이다.

● 안건조정위 시작부터 “협의 뜻 없었다”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키려 하자 주호영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2020.12.8/뉴스1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키려 하자 주호영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2020.12.8/뉴스1
민주당은 안건조정위를 시작하면서부터 야당과 협의 의사가 없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오전 9시 15분 안건조정위가 시작되자 조정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은 박범계 의원이 조정위원장 선출을 제안했다. 여권 의원들은 백혜련 의원을, 국민의힘은 박 의원을 추천했다. 김도읍 의원은 “어제 법안심사소위에서 백혜련 의원은 반민주적, 반헌법적 행태를 보였다”며 반발했지만 박 의원은 곧바로 표결을 부쳐 백 의원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김도읍 의원은 즉각 “언론을 불러 공개로 안건조정위를 진행하자”고 했다. 백 의원은 “여태까지 안건조정위는 비공개로 진행돼 왔다”며 반대했다. “공개가 원칙”이라는 야당 의원들의 항의에 백 의원은 또 찬반 거수를 시킨 뒤 “위원회 의결로 비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장내에서는 “뭐가 무서워서 비공개로 하느냐” “부끄러운 줄은 아느냐”라는 고함이 나왔다. 회의 시작 20분 만에 안건조정위를 비공개로 전환한 것.

문을 걸어 잠금 채 진행된 회의에서 법무부 등 정부 측 인사들은 거의 발언하지 않았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은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사항인 것 같다”고 말한 뒤 더 이상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다.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은 “법원도 같은 의견이다”라고만 했다.

관계기관 의견 청취가 사실상 요식행위로 흐른 가운데 김도읍 의원, 유상범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이 토론에 나서자 백 의원은 “토론을 종결하고 표결하겠다”고 선언했고 군사작전처럼 진행된 안건조정위는 표결 선언 2분만에 종료됐다.

● 7분 45초만에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시킨 법사위


공수처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농성을 진행중인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 회의실로 향하는 백혜련 1소위원장을 막아 서고 있다. 2020.12.7/뉴스1 © News1
공수처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농성을 진행중인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 회의실로 향하는 백혜련 1소위원장을 막아 서고 있다. 2020.12.7/뉴스1 © News1
민주당은 안건조정위를 마친지 29분만인 이날 오전 11시 5분 법사위 전체회의에 공수처법을 기습 상정했다. 법사위는 전날 낙태죄 관련 공청회를 열겠다며 이날 오전 전체회의를 소집했다. 하지만 안건조정위가 통과하자 낙태죄 공청회를 뒤로 미루고 공수처법 개정안을 끼워넣은 것.

회의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김도읍 의원은 윤 위원장에게 “민주화 운동 했다는 사람이 이게 말이 되느냐”고 항의했지만 윤 위원장은 “국회법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 조용히 하시라”며 고함을 쳤다.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은 “오늘 회부된 안건은 완결되지 않았다”고 반대토론을 요청했다. 하지만 윤 위원장은 “지금 토론을 진행할 상황이 아니니깐 토론을 종결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아무리 날치기를 해도 정도가 있지”라고 반발했지만 그는 “지금 토론을 진행할 수 없잖아”라고 소리친 뒤 “이 법안에 찬성하는 위원 기립하라”고 표결에 들어갔다. 여권 의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법사위원 17명 중 11명 찬성이었다. 의결이었다.

야당 의원들이 윤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는 것을 제지하려 하자 그는 왼손으로 의사봉을 잡아 위원장석을 두드려 법안 처리를 공표했다. “대명천지 이런 독재가 있을 수 있나” “의원되지 세상이 안무섭나”라는 항의하자 윤 위원장은 “이게 왜 독재입니까”라고 했다.

절차도 뒤엉켰다. 윤 위원장은 의결 뒤 “앞서서 비용 추계를 생략하는 의결을 해야 했는데 옆에서 시끄럽게 하셔서 생략했다. 다시 여쭙겠다. 공수처법의 비용추계서 생략이 이의 없으시냐”고 물은 뒤 “이의 없다고 하므로 생략됐음을 알려드린다”고 했다.

야당 의원들은 각자 책상 앞에 붙은 명패를 떼어내고 윤 위원장 자리로 반납했다. 김도읍 의원은 “더 이상 야당을 법사위에 들러리 세우지 말라. 앞으로 법사위는 여당 혼자 다 해먹어라”고 했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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