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입법 독주]勞편향 더 심해진 ‘노조법’ 논란
해고-실업자 노조가입 허용하고 사업장 출입제한 조항도 풀어
전임자 임금 회사서 지급해야
재계 요구 ‘파업때 대체근로’ 빠져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온 이른바 ‘ILO(국제노동기구) 3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교원노조법, 공무원노조법 개정안이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한 조치다. 공수처법과 경제 3법 논란에 가려 주목을 덜 받았지만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내용이 대거 포함돼 있어 노동시장에 미칠 파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 정부 들어 막강해진 정규직 노조의 세력이 확대되면서 노사관계의 균형이 무너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 정부안보다 더 노동 친화적으로 수정한 민주당
민주당은 9일 새벽과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잇달아 열고 ILO 3법과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켰다. 국민의힘은 모든 회의에 불참했다. 환노위 국민의힘 간사인 임이자 의원은 “모든 책임도 민주당이 지라는 차원에서 회의에 불참했다”고 했다.
개정안은 노조의 힘을 막강하게 하는 조치를 대거 포함했다. 해고자와 실업자는 물론이고 5급 이상 공무원과 소방관의 노조 가입도 허용된다. 현 정부 들어 ‘1노총’으로 부상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세력을 더 키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준 셈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은 민노총 소속이다.
현행법은 원칙적으로 사용자가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주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런 규정도 삭제했다. 경영계는 “해고자와 실업자가 노조에 가입하는 만큼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은 유지하자”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영계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건 이뿐만이 아니다.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에는 노조의 생산시설 점거를 금지하는 한편으로 해고자와 실업자가 사업장을 드나드는 것을 제한하는 조항을 담았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조항마저 삭제했다. 해고된 근로자가 노조원 자격으로 공장을 점거하고 투쟁해도 막을 근거가 사라진 셈.
실제로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합병하는 주주총회가 있었던 2019년 5월 현대중공업 노조는 생산시설을 점거하려고 쇠파이프 등을 동원해 사측과 충돌을 벌였다. 당시 회사 추산 90억 원의 피해가 있었고 사측은 일부 노조원을 대상으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경영계는 현재 2년인 단체협약 유효 기간을 4년으로 늘리자고 주장했지만 개정안은 ‘최대 3년’으로 한정했다. 여기에 ‘노사 합의’라는 단서를 달아 강성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유효기간 연장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경영계가 요구한 ‘파업 중 대체근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경영계는 강하게 반발, 노동계는 표정 관리
재계는 경제 3법에 이어 노조법까지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한 데 대해 경악스럽다는 분위기다. 한 재계 관계자는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려는 기업에 일상적 경영도 하지 말라는 소리”라며 “이렇게까지 호소를 외면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치적 표 계산에 경제가 희생당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입장문에서 “기업들의 노사관계 부담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긴급 호소문을 내고 “각각의 법률 시행 시기를 1년씩 연장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노조가 생산시설을 점거하면 소송으로 대응했는데, 앞으로는 이런 대응도 못 할 것 아니냐”며 우려했다.
민노총은 입장문을 통해 “신생 노조와 소수 노조의 노조 활동에 악영향을 미치고, 사용자의 개입과 통제가 가능하도록 여지를 남겨 놓은 개악(改惡)”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날 민노총은 노동법이 개정될 때마다 관행적으로 발표했던 총파업 계획을 내놓지는 않았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ILO 협약의 기본정신은 노사 간 자치질서가 구축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라며 “이번 개정은 그런 정신과 모순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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