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소신파로 꼽히는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공수처법 개정안 찬성 표결이 민주당 당론은 아니어서 지도부가 문제 삼을 수 없다. 국회법에 국회의원은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는 자유투표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조 의원은 이날 본회의에 참석했지만, 투표 자체에 참여하지 않았다. 표결에서 찬성과 반대, 기권 버튼 중 아무것도 누르지 않는 방식으로 반대 소신을 피력했다.
조 의원은 본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표결을 안한 이유에 대해 “표결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의 입장과 부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에도 조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우리는 야당의 비토권이라는 안전장치가 있으니 과하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그 비토권을 무력화시키는 법개정을 진행시키려 하고 있다”고 당에 쓴소리를 냈다.
지난해 민주당이 제1야당을 배제한 채 공수처법을 제정할 때 명시한 야당의 비토권인데도, 상황이 어려워지니 민주당 스스로 말을 바꿔 뒤엎었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갖기 힘들다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야당이 민주당을 공격할 때 드는 논리이기도 하다.
조 의원은 “(표결 불참이) 그간 제 입장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라며 강성 친문(친문재인) 지지층 등의 비판이 쏟아질 것으로 보이는데 대해선 “내가 다 감당해야 하겠지 않나”라고 답했다.
당 지도부와 사전 교감이 있었는지에 대해선 “없었다”고 했다.
조 의원은 “지난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그때도 난 반대했다. 지금도 그때와 똑같다”고도 했다. 앞서 조 의원은 지난 3월 민주당이 말을 바꿔 비례연합정당 창당을 결정하자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총대를 메고 “원칙 없는 승리를 하려다가 원칙 없는 패배를 할까 두렵다”고 소신발언을 해 주목받은 바 있다.
한편 민주당 지도부는 조 의원의 표결 불참에 대해 따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당론 투표가 아니기에 문제 삼을 근거도 없을 뿐더러,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자유로운 의사와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후 기자들의 질문에 “(조 의원 불참에 대해) 몰랐다”고만 짧게 답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공수처법 개정안 투표는 당론 투표가 아니어서 조응천 의원 결정은 문제가 안된다”며 “당론이 아니었다. (금태섭 전 의원과)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주요 개혁 법안들에 의원들의 자유로운 의사들이 반영됐다”며 “공정거래법 개정에 기권한 의원들도 있다”고 부연했다.
지난해 12월 30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법안인 공수처 설치법안에 기권표를 던졌다가 ‘당론 위배’를 이유로 당의 징계(경고 처분)를 받은 금태섭 전 의원 사례와는 다르다. 일부 강성 당원들이 조 의원의 징계를 요구한다 해도 해당되지 않는다.
정당이 ‘강제적 당론’을 정하는 경우는 종종 나왔지만, 그걸 위배했다는 이유로 소속 정당 의원을 징계한 사례는 실제로도 드물다.
앞서 민주당은 2013년에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자료제출요구안’의 찬성 당론을 강제적 당론보다 더 높은 수위인 ‘구속적 당론’으로 결정했다. 박지원·추미애 의원 등 당시 민주당 중진 의원 4명이 반대표를 던졌지만, 이들에겐 원내대표 명의의 ‘서면 경고’만 발송됐을 뿐 징계 처분이 내려지진 않았다.
또한 현행법은 국회의원의 자유투표 권한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 46조는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유투표’ 조항으로 알려진 국회법 114조 2항도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징계’ 근거가 없음에도 민주당 당원 게시판에는 징계 요청 등 항의가 쇄도하고 있다.
민주당 당원게시판에는 “빨리 당에서 나가라”, 조응천 의원의 탈당과 제명을 당에 정식으로 요구한다“, ”해당행위를 했으니 제명시켜라“, ”당의 의견을 무시하러 민주당에 왔느냐“ 등의 비난 글이 올라왔다.
조 의원 페이스북에도 ”당신을 뽑아준 유권자를 배신했다“, ”금태섭을 따라가라“, ”소신은 좋지만 국민의힘이 더 어울린다“ 등의 비판 댓글이 달렸다.
검사 출신인 조 의원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폭로한 주역으로도 유명하다. 초선 때부터 공수처 설치에 우려를 표하는 등 소신을 드러내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으면서 금태섭 전 의원, 김해영 전 최고위원, 박용진 의원과 함께 ‘조금박해’라는 별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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