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에서 패배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상하원을 통과한 ‘2021년도 국방수권법(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NDAA)’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미군 2만8500여명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그 의도가 주목된다.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대변인은 15일(이하 현지시간) 언론브리핑에서 “대통령은 국방수권법에 대해 여전히 거부권을 행사할 계획”이라며 “국방수권법에 통신품위법 230조 폐지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우려 중 하나는 아프가니스탄, 한국과 독일에서의 군대 철수 및 배치에 대한 조항에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수권법을 반대하는 표면적 이유는 통신품위법 230조 문제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법안이 ‘중국과의 전면전’을 치르는데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즉 이 법안을 갖고 중국과 전쟁을 치를 수 있겠느냐는 반론이다.
이번 국방수권법안에는 중국을 겨냥한 22억 달러(2조3811억원) 규모의 ‘태평양 억지구상(Pacific Deterrence Initiative)’ 항목이 신설됐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Δ무인기 및 순항·탄도·초음속 미사일 개발 Δ차세대 장거리 정밀 타격시스템 개발 Δ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감시 시스템 강화 Δ동맹국과 양자·다국적 연합훈련 등 13개 세부항목에 국방비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이 법안은 45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두께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중국과 전면전을 치를지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워싱턴 정가에서 나온다.
백악관은 우선 ‘통신품의법 230조’를 문제 삼았다. 매커내니 대변인은 “통신품의법 230조를 폐지하지 않으면 트위터가 중국의 선전물을 검열하지 않고 계속 방치하게 된다”고 밝혔다.
통신품위법 230조는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SNS) 회사에 대해 이용자가 올린 게시물에 관한 법적책임을 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SNS을 통해 선전전이나 심리전에 나설 때, 통신품위법이 연방정부의 대응에 걸림돌이 된다고 백악관은 판단하고 있다. 즉 국방수권법에 통신품의법 230조 폐지를 명문화해 SNS 기업들의 면책특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과 보수진영이 그간 SNS 기업에 대해 쌓아온 불만도 국방수권법을 거부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자신의 게시물에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는 경고를 표시해온 트위터에 불만을 터트리며 SNS 기업을 규제하겠다고 경고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부터 민주당 대선후보가 이긴 주에서 선거사기가 발생했다는 증거가 충분하다며 ‘부정선거’ 주장을 트위터에 계속 올리고 있고, 트워터는 이 트윗에 경고 표시를 붙이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SNS 기업의 면책특권을 박탈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바 있지만 법적 구속력은 약한 상황.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수권법을 고리로 SNS 기업들을 제대로 손보려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워싱턴 일각에서 나온다.
◇주한·주독 미군 규모 축소 ‘사실상 불가능’ 규정…트럼프 반발
백악관의 ‘거부권’ 입장에서 우리에게 가장 주목을 끄는 부분은 주한미군에 대한 언급이다. 내년도 국방수권법안은 현재 2만8500명의 주한미군 축소를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다.
이 법안은 국방장관과 미 의회가 주한미군 규모 축소에 합의하더라도 그 시점으로부터 90일 간은 국방예산을 전혀 사용할 수 없도록 못 박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병력 감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또 주한미군 규모를 축소하려면 국방장관이 의회 군사위원회에 출석해 Δ미국과 역내 동맹국들의 안보와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하고 Δ한국·일본 등 미국의 우방국으로부터 적절한 자문을 구했다는 점을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독미군도 현재 3만4000명 이하로 감축하는 것은 미국의 안보국익을 침해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약화시키는 ‘중대한 전략적 과실’로 규정하고 ‘감축 평가 보고서’를 미 의회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안은 또한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감축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었다.
백악관이 대변인 브리핑에서 ‘아프가니스탄, 한국과 독일에서의 미군 감축’에 대한 과도한 규정을 문제 삼고는 있지만 이 점이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수권법안을 거부하는 핵심이슈는 아닌 것으로 미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내년 초 백악관을 떠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이를 한미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카드로 쓸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수권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상·하원은 각각 3분2 이상 찬성으로 거부권을 무력화하고 법률을 공포할 수 있다.
미 하원이 지난 8일 찬성 335표·반대 78표, 상원이 11일 찬성 84표·반대 13표의 압도적인 표차로 국방수권법안을 가결 처리한 바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미 의회가 이를 무력화할 가능성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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