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24일 낙태죄 폐지 논의와 관련해 임신기간을 기준으로 처벌 여부를 나누기보다 ‘여성의 피해 최소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정 후보자는 이날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진행된 인사청문회에서 ‘낙태죄 관련 정부의 형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입장인가’를 묻는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일단 여성계에서는 주 수 제한을 두는 것에 대해 반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안은 ‘임신 초기 14주까지 임신중지(낙태) 허용, 15~24주는 사유에 따라 허용’하는 방안으로,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판결보다 후퇴했다는 비판을 여성계로부터 받고 있다.
정 후보자는 지난 9월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하는 ‘여성 100인 선언문’에 서명한 바 있으며, 이와 관련해 그는 이날 “제가 서명했을 때는 그 의견(전면 폐지)에 대해 동의를 했었다”고 했다.
다만 여가부 장관 후보자로서 향후 개인 소신만 고집하지는 않겠다고 답했다. 그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국무위원으로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개인 생각을 끝까지 주장하면서 일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서 의원이 발의한 형법 개정안과 관련해서는 “모든 여성이 아무런 판단없이 그렇게 낙태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서 의원의 법안은 정부안보다 강력한 주 수 제한을 둔 것으로, ‘임신 10주’까지만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이다.
정 후보자는 “임신 후반기에 낙태를 하게 되면 산모의 건강도 굉장히 위험해지게 된다”며 “태아의 생명도 물론 소중하지만 주 수가 폐지됐다고 해서 모든 여성이 아무런 판단없이 그렇게 낙태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불법적으로 낙태하는 것들이 굉장히 사회·경제적으로 어렵고 임신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생명 존중권에 대한 말씀도 동의한다. 그렇지만 이 문제가 맨 처음에 제기됐던 상황이나, 임신한 여성들이 사회적인 여러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낙태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그 낙태가 불법인 상황에서 더 (큰) 위험에 처하는 상황, 이런 것들도 같이 고려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후보자는 앞서 낙태죄 전면 폐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의 질의에서도 “낙태를 법률로써 처벌하기보다는 여성의 건강권이라든지 재생산에 대한 권리라든가, 이런 것들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변화돼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소신”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국회의 개정안 논의 지연으로 내년부터 입법 공백이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새로운 입법이 마련될 때까지 사각지대에서 여성들이 만약 낙태를 하게될 경우 이 분들이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하지 않을 것인지 하는 그런 문제들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일단 그 기간 동안 어떻게 여성들이 받게 될 피해를 최소화할 것인가에 맞춰서 노력을 할 것”이라며 “정부 입법과 의원들께서 제시하신 새로운 입법안들 중에서 어떤 방향으로 변화될 것인지는 여가부의 소관을 넘어간 상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최선을 다해 의견을 제시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코로나19 사태 속 의료종사자 자녀 등에 대한 국가 돌봄 지원의 필요성에도 공감했다. 정 후보자는 이 의원의 질의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코로나19 상황에서 최일선에서 고생하시고 계시는 분들인데 그 가족들에 대한 지원은 당연히 그렇게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여가부가 진행하는 ‘여성 청소년 위생용품지원 사업’의 명칭을 ‘생리용품’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질의에 대해서도 “(부끄러운 용어가) 아니다”라며 동의했다.
방송인 사유리씨의 문제제기로 공론화된 ‘비혼 출산’ 문제와 관련한 인식을 묻는 이수진 민주당 의원(서울 동작을)의 질의에는 “한 부모 가족, 여러 형태의 동거혼 가족 등 변화하는 가족에 대해 ‘이걸 정상가족이 아니다’라고 정책 대상에서 배제하기보다는 그걸 충분히 감안하고 여론의 중요한 의견을 수렴하면서 현실의 변화에 맞춰가는 그런 정책 추진돼야 한다”고 답했다.
정 후보자는 “가족의 규범과 정의의 변화를 떠나서 현재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가족들이 지원받을 수 있는 정책 범위 안에 들어오는 게 중요하다”며 “가족의 규범이나 형태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돼야 하느냐는 좀 더 논의를 거쳐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다만 “당장 여가부가 어떤 방향을 취하거나 앞장서서 제시하는 건 조금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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