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2015년 합의 준수” vs 韓 “사죄와 반성”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30일 03시 00분


‘위안부 손배소’ 선고앞두고 설전

한일 양국이 내년 1월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에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1심 판결을 앞두고 날 선 설전을 벌였다. 일본은 “2015년 위안부 합의 준수”를, 한국은 “사죄와 반성”을 강조하며 정면충돌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서울중앙지법에 낸 재판에서 승소할 경우 일본 정부 재산을 압류할 수 있게 돼 민간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보다 한일관계에 더 큰 파장이 예상된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상은 29일 요미우리신문에 “위안부 합의가 5년이 지났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위안부 합의는) 나라 간의 약속이다. 책임지고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위안부 합의 5주년(28일) 다음 날인 이날 사설에서 “합의 정신을 짓밟는 문재인 정권의 대응이 불성실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모테기 외상은 앞서 25일 “계속 한국 측에 합의 실시를 강하게 요구해 갈 생각”이라고도 밝혔다.

그러자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이 29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본 정부가 스스로 표명한 바 있는 책임 통감과 사죄·반성 정신에 부응하는 행보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즉각 반박했다. 최 대변인은 “2015년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 중심 접근이 결여돼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국내외의 평가”라면서 “(유엔의 합의 수정 권고에도) 우리 정부는 정부 간 합의라는 점에서 파기,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최근 한일관계 개선을 강조하면서 갈등을 피해 온 것과 사뭇 다른 강경한 발언이었다.

양국이 날을 세운 것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1심 판결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고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낸 소송은 내년 1월 8일, 고 김복동 할머니 등 21명이 낸 소송은 1월 13일 선고가 내려진다. 일본 위안부 문제 관련 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우리 법원의 첫 판단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승소하면 한일관계가 강제징용 배상 판결 때보다 훨씬 더 큰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등 민간기업에 배상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위안부 재판은 피고인이 일본 정부다. 손해배상액이 정해지면 주한 일본대사관 관저 등 정부 재산을 압류·매각할 가능성이 있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일본은 국가 책임을 부정하면서 “국제법상 국가는 다른 나라의 재판에서 피고가 되지 않는다”는 ‘주권 면제’를 주장하고 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원고 승소 판결이 날 경우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도쿄 올림픽에 맞춰 한일관계를 개선해보려는 우리 정부에 큰 난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강제징용 배상판결 이행을 위해 일본 기업의 압류 자산을 매각해 현금화하는 절차도 진행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현금화 여부를 한일관계의 마지노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NHK에 따르면 강제징용 배상 소송의 피고인 미쓰비시중공업은 29일부터 한국 법원의 자산 압류명령 결정문의 효력이 발생하자 즉시 항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매각 대상인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은 특허권 6건과 상표권 2건으로 가치가 약 8억400만 원이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일본#위안부 손배소#한국#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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