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선원 5명 등 20명 선원이 타고 있던 화학물질 운반선인 한국 케미(Hankuk Chemi)호가 이란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돼 이란 남부 항구인 반다르아마스 항구에 억류되면서 한국이 대형 국제분쟁에 휘말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란이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사망 1주기를 맞아 미국에 대대적인 보복을 예고하는 등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관계가 치솟은 상황에서 미국의 대(對)이란 경제제재에 동참한 한국의 유조선을 나포했기 때문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이란이 한국에 동결된 최대 90억 달러(약 9조7000억 원)로 추정되는 원유 수출대금을 돌려받기 위해 한국 선박을 나포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아덴만과 페르시아만 일대에서 우리 선박과 교민보호 임무를 수행해 온 청해부대 33진 최영함(4400t급)은 4일 오후 나포 사실을 파악한 뒤 즉각 호르무즈 해협으로 이동했다. 당시 청해부대는 오만 무스카트항 동쪽 일대에서 작전을 수행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승조원을 비롯해 특수전(UDT) 장병 등 300여 명이 승선해있는 최영함은 5일 새벽(한국시각) 호르무즈 해협에 도착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와 주이란대사관은 이란 측에 “선박 억류 상황 파악 및 선원 안전 확인, 선박 조기 억류 해제”를 요청했다.
나포된 선박은 2일 사우디에서 출발해 아랍에미리트(UAE)로 가다가 호르무즈해협에서 나포됐다. 아틸레이트 등 화학 물품 7000t을 싣고 있었으며 UAE에 도착해 파리핀 제품을 실은 뒤 서인도에 출항할 예정이었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미얀마 출신 선원들도 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매체에 따르면 이란혁명수비대 해군은 4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한국 유조선이 계속해서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해협에서 환경 기준을 위반해 유류오염 등을 일으켜 이란혁명수비대 군함에 의해 제지된 뒤 항구에 구금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한국 케미호가 소속된 해운사 디엠쉽핑 관계자는 “항로도상 문제가 없었고 정상적인 항해를 했다”며 “나포됐을 당시 선장과 통화를 했는데 이란 군인인지 해안경비대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가가와 조사를 했는데 무슨 이유인지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포 해역이 공해였고 이란 측이 주장하는 환경오염도 없었다고 햇다.
이 선박이 억류된 반다르아바스 항구가 있는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곳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한국 유조선 나포가 한국을 표적으로 한 군사행동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이 2019년 호르무즈 해협 ‘항행의 자유’를 위한 한국의 파병을 요청하자 이란 측은 단교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여기에 미국의 이란 경제제재로 한국 정유·화학회사가 수입한 이란산 원유 수출대금 최대 90억 달러가 동결되면서 이란 정부의 반발이 이어진 상황이다.
특히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조만간 원유 수출대금 동결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이란을 방문하는 일정을 조율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란은 수주 전 한국에 동결된 자산 찾아 백신을 살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란 혁명수비대가 환경오염 관련 법규정 위반을 이유로 한국 유조선을 나포해 한국을 동결된 대금 지불을 압박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해운사 관계자는 “2019년 영국 선박이 호르무즈에서 45일간 나포된 바가 있다”며 “통상 나포는 항로이탈과 밀수선 검색 외에 정치적 이유로 나포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치적인 이유라면 이란 원유대금 동결이나 솔레이마니 사망 1주기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나포가 장기화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