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표단이 7일 이란에 도착해 나포된 한국 선박 ‘한국케미호’ 석방과 국내에 동결된 이란의 원유 수출대금 70억 달러(약7조5600억 원) 일부의 활용 방안을 이란 측과 논의했다. 하지만 이란은 동결자금을 활용한 백신구입뿐 아니라 동결 대금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10억 달러(1조870억 원)를 의료 물자 구입에 사용하겠다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4000~5000만 달러어치로 추정되는 백신 구입비용을 훌쩍 넘는 액수다. 이란 외교부가 “선박 나포는 법적 문제”라며 외교적 해결을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이란의 요구들이 속속 윤곽을 드러내면서 협상 난항으로 사태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대표단장인 고경석 아프리카중동국장은 이날 출국 전 기자들과 만나 “이란 외교부 및 (동결대금으로 인도적 지원을 하는) ‘인도적 교역 워킹그룹 회의’ 관계자를 만날 것”이라며 나포 선박 석방 문제뿐 아니라 동결 자금을 활용한 백신 구매도 함께 논의를 시도할 것이라고 했다. 이란과 정부 모두 표면적으로는 선박 나포와 동결자금 문제가 연결되지 않는다고 해왔지만 실제로는 분리될 수 없는 사안임을 인정한 셈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 이란 사정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이란이 지난해부터 동결대금을 활용해 10억 달러어치의 의료 물자 등을 수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한국 외교부에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직접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두 차례 친서를 보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요청했다는 것. 이 소식통은 “문 대통령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을 줬지만 외교부가 미국의 이란 제재 위반을 우려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자 이란 당국이 크게 실망하며 불만을 표시했다”고 했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친서와 10억 달러 문제에 대해 “외교 관행 상 정상 간 교환 행위를 확인해주지 못한다”면서도 부인하지는 않았다.
또 한국과 이란 정부가 협상 중인 코로나19 백신 구매를 위한 국제 협의체인 코백스(COVAX) 퍼실리티에 동결자금 4000만~5000만 달러를 대납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란은 미국을 불신하면서 미국 은행을 거치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소식통은 “이란이 미국을 신뢰할 수 있는 안 또는 미국을 거치지 않고 백신을 구입할 수 있는 안을 우리가 제시해야 하는데 미국과 이란 사이에 우리가 끼어 있다”고 토로했다. 이 소식통은 나포 사건에 대해 “이란이 지금 미국에 대해 시위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백신-동결자금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10일 이란을 방문하더라도 쉽게 결론이 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로하니 대통령이 나서 문 대통령에게 직접 해결을 요구해오는 등 한-이란 간 불신이 깊은 만큼 외교부가 아니라 청와대가 직접 문제 해결엔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외교부는 “주이란 한국대사가 6일 우리 선원과 직접 면담하고 선원들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선원들은 이란의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선박 내에 머물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