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이라 쓰고 ‘권력 예속’으로 읽는 文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8일 10시 45분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검찰개혁' 핵심

영어 ‘Justice(정의)’의 어원인 ‘유스티티아(Justitia)’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이다. 천으로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긴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서 있는 형상이다. 정의의 여신에 칼과 저울을 들린 것은 엄격하고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고 판단하라는 의미다. 눈을 가린 것은 법 집행과 판단에서 그 어떤 사사로움과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정의가 실현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칼을 상징하는 검찰과 저울을 상징하는 법원의 존재 목적과 과제를 여신상이 잘 보여준다.

칼은 특히 상대방을 벨 수 있는 무기여서 신중하고 공정하게 사용해야 한다. 불의한 자들을 응징하는 목적으로 쓰면 정의가 되지만 반대로 불의한 권력자들이 정적이나 국민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면 그 자체가 무서운 흉기로 돌변한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나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들이 독재자의 권력기반 강화나 정권 연장을 위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지식인과 시민들을 잡아가고 투옥하는 손발이 돼주었던 것이 그런 예다.

정의의 여신
정의의 여신
이런 이유로 지난 정부까지만 해도 검찰, 경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 개혁을 논의하면 대통령을 위시한 집권세력이 수사기관을 자의적으로 부리지 못하도록 정치적 외풍을 차단하는 것이 지상과제이자 목표로 인식돼왔다. 검찰도 과거 대통령과 청와대 뜻에 따라 법 집행을 한 적이 있는 과오 때문에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가 늘 검찰개혁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 와서는 검찰개혁을 한다면서 ‘권력 독립’이 아닌 ‘권력 예속’을 심화시키려는 시도가 빈번히 이어졌다. 지난해 말 일단락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무리한 징계 사태를 비롯해 작년은 검찰 수사와 검찰 인사에 대한 정권의 개입이 일상화되다시피 했던 한 해였다.

법무부 장관이라 할지라도 검찰의 구체적 사건 수사에 대해서는 검찰총장을 통해서만 지휘할 수 있도록 검찰청법에 명시돼 있는 것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장관을 통해 검찰 수사가 왜곡되는 폐해를 차단하기 위함이다. 행정부 소속이지만 준사법기관인 검찰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핵심 장치인 것이다. 그런데도 지난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수사지휘권과 감찰을 남발하다 급기야 윤 총장의 중도 퇴진을 압박하며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 사태를 초래해 사실상 무위에 그쳤다.

법으로 2년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과 검찰에 대해 정권의 간섭과 공공연한 압박이 현 정부만큼 노골적으로 이뤄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는 게 법조계와 법학계의 공통된 평가다. ‘조국 사태’ 이후 검찰의 정권 비리 수사가 가속화하자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지난해 여권 전체가 나서 윤 총장 퇴진과 검찰 권한 축소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지금 여권은 검찰개혁의 지속적 추진을 천명하고 있지만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소한 검찰개혁을 주장하려면 검사들의 비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거나 검찰이 정권의 외압을 받아 실세 비리를 무마한다든가 하는 중대한 문제점들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윤 총장 취임 이후 검찰은 정권 비리를 원칙대로 수사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박수를 받는 것이 현실이다.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비리를 시작으로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비리 등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법대로 밀고나가다 정권으로부터 압박을 받는다는 점에서 여권이 주장하는 검찰개혁의 명분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여권의 ‘검찰개혁’을 유심히 지켜보면 ‘검찰개혁’이라는 말만 반복할 뿐 개혁의 방향과 목표가 무엇이고, 왜 지금 검찰개혁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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