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기술적 문제' 주장 속 협상 난관 우려도
70억 달러 동결자금 창의적 해결 방안 논의 주목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이 10일 이란으로 출국하면서 이란에 억류돼 있는 한국 선박과 선원 문제를 조기에 해결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란 당국이 선박 억류는 ‘기술적 문제’로 사법 절차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선을 긋고 있는 데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개입해 있어 억류 해제 협상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이란 측에서 한국에 동결돼 있는 원화자금 문제 등에 대한 해결을 요구하고 있어 최 차관이 창의적인 해법을 내놓고 억류 사태의 장기화를 막을지 주목된다.
최 차관은 이날 새벽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기를 타고 카타르 도하를 경유해 이란 테헤란으로 향했다. 최 차관은 지난 7일 테헤란에 먼저 현지에 도착한 고경석 아프리카중동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실무 대표단과 함께 선박 및 선원 억류 상황을 점검하고, 이란 당국과 억류 해제를 위한 교섭에 나설 예정이다.
최 차관의 이란 방문은 선박 억류 사건 전부터 이란 당국과 조율돼 왔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이란과의 관계 회복 가능성이 높은 만큼 사전에 이란과의 관계를 다지고, 국내에 예치된 이란의 원화 자금 해소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터지면서 억류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 순위로 바뀌었다.
문제는 이란 당국이 선박 억류 이유로 ‘해양 환경 규제’ 위반에 따른 기술적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어 협상 자체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 5일(현지시간) “한국 선박 문제는 완전히 기술적인 것”이라며 “한국 외교부 차관이 가까운 시일 내에 이란을 방문할 예정이지만 이 문제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마무드 바에지 이란 대통령 비서실장 역시 지난 6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한국 대표단의 방문에 대해 “이번 방문은 혁명수비대가 최근 억류한 선박 때문이 아니라 경제 협력과 금융 문제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에 따라 최 차관과 실무 대표단도 이란이 제시한 해양 오염의 근거를 요청하고, 기술적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대처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선박의 이란 영해 침범 및 이란 혁명수비대의 승선·나포 과정에서 국제법적 위법성도 검토하는 등 법적 대응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최 차관은 출국 전 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우리 선박과 선원들이 억류된 상황이 연출돼 유감스럽다”며 “선원들의 신변이 안전하다는 것에 안심이 되지만 상황은 엄중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와 이란 간에 나눠야 할 대화가 많다”며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한국과 이란이 협력했던 역사와 관계, 신뢰가 있다. 영사 사안은 사안대로, 한국과 이란 간 주요 사안들은 사안대로 주요 인사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최 차관이 ‘창의적 해법’을 통한 동결자금 문제를 논의하면서 이번 사태의 해결 방안을 논의할지도 주목된다.
최 차관은 동결자금 논의에 대해 “이란 정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현장에서 들어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미국과 협의해야 할 것들을 갈라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이란 당국은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의 이란중앙은행 명의 원화 계좌에 묶여있는 원유수출대금 70억 달러(7조6000억 원)로 의약품과 의료기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등 구입을 요청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 5월 50만 달러 상당의 유전병 치료제 수출을 시작으로 의약품, 의료기기 위주의 교역 품목을 확대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지만 전체 규모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최근에는 이란이 코로나19 백신 확보를 위해 한국에 예치된 원화 자금을 백신 공동개발 및 배분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에 대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미 재부무 승인까지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달러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자금 재동결 우려가 제기되며 이란 당국은 한국 정부에 미 은행을 거치지 않는 방안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정부는 한국에 동결된 자산으로 10억 달러 상당의 의료장비를 구매하고 싶다는 의사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직접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두 차례 친서를 보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정상 간 친서 교환 행위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지만 부인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정부가 이란과 인도적 교역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여러 가지 창의적인 방안들을 생각하고 있다”며 현지에서 원화 자금 문제의 봉합 가능성을 열어뒀다.
일각에서는 억류 주체인 이란 혁명수비대가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통제를 받는 조직이 아니라는 점에서 로하니 정부와 외교부만 접촉해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로 인해 이란 혁명수비대 측과 다양하게 접촉하고 설득하면서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4일 오후 3시30분께 호르무즈 해협의 오만 인근 해역에서 항해 중이던 한국 국적의 석유화학제품 운반선 ‘한국 케미’호가 이란 혁명수비대(IRGC)에 의해 이란 영해로 이동·억류됐다. 선박에는 한국인 5명, 미얀마 11명, 베트남 2명, 인도네시아 2명 등 모두 20명이 탑승해 있으며, 주이란 한국대사관은 선원 일부를 면담해 안전과 건강을 확인했다.
한편 최 차관은 사흘간 이란에 머문 후 카타르로 이동할 예정이다. 최 차관은 카타르 고위급 인사들과 면담하고, 우리 기업 진출 확대 등 양국 협력 증진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뒤 14일 귀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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